William.c.Oberlin@boeing.com 내 주변에 있는 한국 친구들은 정부정책에서부터 자식교육방법까지 다양한 궁금증을 내게 물어온다. 특히 내가 주한미국상공회의소 회장으로 취임한 이후에는 언론과 정·재계 인사들을 포함한 많은 한국인들이 내가 한국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나한테 한국이라는 나라는 무엇인가? 왜 나는 태어난 땅을 떠나 한국에 와서 이렇게 오랜 시간을 지내왔나? 솔직히 말하면 처음에는 그럴 생각이 별로 없었다. 나는 우연한 기회에 한국으로 파견됐고 그 후에는 직장 때문에 한국에 머무르게 됐다. 하지만 내가 17년이란 짧지 않은 세월을 한국에 머무르게 된 건 분명 나를 매료시키는 뭔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외국인들은 한국을 아시아의 아일랜드라고 한다. 한국이 그랬던 것처럼 아일랜드도 초고속 경제성장을 이룩한 민족이기 때문이다. 외국인들은 한국인을 상냥하고 친절하며,근검하고,손재주가 좋고,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감수성에 대한 평가는 자칫 오해를 부를 소지가 있다. 잘못 해석하면 한국인들의 성격이 급하고 일을 감정적으로 처리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어떤 외국인 친구는 한국인들에게 계약서는 무용지물이라고 푸념하면서 한국인들은 인맥,체면,친분관계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다고 했다. 그 친구는 어떻게 계약서나 법보다 인간관계를 더 가치있게 여기면서 일을 하느냐며 한국에선 사업하기 힘들다고 했다. 이 친구는 당연히 계약을 맺지 못하고 한국을 떠났다. 이 친구만 탓할 수 없는 게 나도 처음엔 이런 문화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나는 한국생활을 계속하게 되면서 한국인의 정서를 이해하기 위해 한국속담 모음집을 읽었다. 그 중 인상 깊었던 것은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다. 나는 이 말을 통해 한국인 기질의 깊이와 힘을 느낀다. 한국인들은 단순한 서류에 집착하기 보다는 자기 가문의 역사와 명예를 더 소중히 여기는 것 같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약속을 하고,그 약속을 지킨다는 게 얼마나 멋진가. 17년 전 아무 것도 모르고 한국에 온 나는 지금 이 땅에서 딸을 낳고 행복한 가장으로서,기업의 대표로서 내게 많은 것을 준 한국 사회와 경제에 기여하려고 노력하며 살고 있다. 과연 우리는 죽어서 각자 무엇을 남길 것인가? 생각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