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속옷은 재래시장이나 동네 양품점에서 주로 팔렸다. 백화점에 '브랜드 매장'이 있었지만 찾는 이는 많지 않았다. 속옷은 위생상의 이유로 필요한 '생필품'이라는 인식때문이었던지 '브랜드 속옷'은 선진국의 얘기였다. 하지만 브랜드 외에 동네 양품점 등의 속옷시장은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더이상의 매출확장이 어렵게 되자 기업들은 유통을 늘리는 데 더욱 치중했다. 백화점에서나 동네 양품점에서나 같은 브랜드 제품이 마구 뒤섞여 팔리기 시작한 것이다. 여성란제리 기업 비비안의 고민은 여기서 비롯됐다. '유명상표'와 '잡표'가 섞여있는 재래 유통망에서 브랜드 가치가 걷잡을 수 없이 실추됐기 때문. 그대로 가다간 저가제품과 '동급'으로 취급될 분위기였다. 1957년 창사 후 50년 가까이 쌓아올린 공든탑이 무너질 위기였다. 비비안 경영진은 브랜드 관리에 사활을 걸기로 했다. 1997년부터 본격적인 관리가 시작됐다. 우선 전국에 퍼져있는 매장부터 정리했다. '매장 정예화'를 위해서다. 온갖 브랜드의 속옷을 함께 취급하는 곳이나 외곽에 있는 영세한 매장부터 추려나갔다. 새로 내는 매장의 조건도 까다롭게 했다. 중복되는 상권에는 점포를 열지 않았고 기존 매장도 경쟁력 있는 곳으로 합쳤다. 당시 1천8백개에 달하던 매장수가 지금은 2백80개로 정리됐다. 유통망별로 브랜드도 차별화했다. 전문점과 백화점은 '비비안',할인점은 '드로르',홈쇼핑은 '로즈버드'라는 이름으로 전용 제품을 따로 만들어 공급했다. 비비안은 철저히 노세일 등을 통해 고급브랜드로 이미지를 정착시켰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1997년 백화점과 할인점의 매출비중은 각각 28%와 8%. 현재는 각각 40%와 30%로 끌어올렸다. 작년에는 란제리기업으로는 처음으로 매출 2천억원을 넘겼고 올 상반기에는 속옷전문브랜드를 누르고 전체 시장 1위로 올라섰다. 이같은 노력으로 지난 3월 한 시장조사기관이 실시한 속옷 고객만족브랜드 조사에서 여성속옷부문 고객만족도 1위를 차지했다. 김혜수 기자 dears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