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ident@kdu.edu 내가 오랫동안 남의 나라에 사는 동안 한국에서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우선 경제적으로 윤택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연평균 소득은 내가 떠날 때보다 거의 1백배를 넘게 되었고,한강 이남에는 새 서울이 하나 더 생겼다. 강산의 경관이 달라지는 지각변동도 일어났다. 그 많은 변화 중에서도 '비닐하우스'가 가져온 변화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비닐하우스는 한국농업의 혁명을 가져왔다. 이 비닐하우스 덕에 봄철이 아니면 못 먹던 봄나물을 겨울에도 먹게 됐고,여름 과일인 딸기나 수박도 이른 봄에 먹을 수 있게 됐다. 오히려 옛날에 수박과 참외를 먹던 제철에는 수박이나 참외를 구하기 어렵게 됐다. 말하자면 철이 따로 없게 된 것이다. '철이없다'는 말의 뜻을 사전에서 찾아봤다. 1960년대 이후에 쓰여진 문헌들을 '말뭉치'로 해서 편찬된 1998년판 '연세한국어사전'에 따르면 '철없다'는 말은 '사리를 분별할 만한 지각이 없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내 생각에 이 말의 어원은 계절의 변화를 모를 정도로 어리석다는 말에서 유래한 것 같다. 입춘이 언제이고,우수와 경칩이 언제이며,곡우나 망종은 언제인지를 모르는 사람이면 철이 없는 사람일 것이다. 내가 음력을 쓰지 않는 나라에서 오래 사느라고 '물리적'으로 나이는 먹었어도 이런 계절의 변화를 모르고 살았으니 나는 철이 없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음력을 쓰는 한국에서 줄곧 살아온 사람들도 따지고 보면 철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계절의 변화가 달력에 표시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옛날 식으로 생각하면 착각이다. 봄에 나는 나물의 이름을 쓰라고 하면 모두가 헷갈릴 정도로 계절적인 과일이나 나물들이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있다. 달래나 냉이는 이미 봄나물만은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가 철이 없는 사람이 됐고,하는 말조차도 철없는 사람이 하는 말을 하고,행동거지도 그렇게 하는지 모른다. 비록 철은 없게 되었어도 말과 행동은 철이 있게 하는 방법은 없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