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onung@seoulauction.com 참여정부가 내건 기치 중의 하나가 '토론공화국'이다. 이에 걸맞게 사회 각 부문에서 활발한 토론이 벌어지고 있으나 유독 미술계만은 조용하다. 우리 미술계는 비평 역사에 있어서 아직까지 제대로 된 '비판'이 없었다고 한다. 미술비평에 비판이 없다보니 미술 하는 사람들간에 자조(自嘲)적인 표현으로 '주례사(主禮辭)'비평이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비평이 작품의 들러리로 전락하게 된 것은 작가들이 비판을 극도로 싫어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조금이라도 비위에 거슬리는 비평을 하게 되면 당장 항의가 들어오고,학연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선배 스승의 눈치를 봐야 한다. 그러다 보니 활발한 비평이 뿌리 내릴 수가 없다. 1973년에 화단을 떠들썩하게 했던 작고작가 L씨와 N씨의 미술논쟁은 다른 작가와 비평가들이 가세하면서 추악한 인신공격으로 변질되어서 세인의 관심 아닌 지탄을 받았다. 이듬해 여름 한 비평가의 유명 동양화가의 작품에 대한 비판은 그 평론을 실은 잡지사와 그 작가의 출신교이자 자신이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S대 미대 동문들의 패싸움으로까지 비화됐다. S대 미대 동문들은 '항의문'을 들고 잡지사를 찾아가 '사과문'을 낼 것과 잡지를 회수할 것 등 7개 요구사항을 내걸고 이를 들어주지 않을 경우 '실력행사'까지도 불사하겠다고 나섰다. 미술사에 있어서 르네상스 이후 최초의 총체적 혁신으로 기록되고 있는 인상주의를 비롯한 중요한 미술사조는 비평가들의 '조롱과 빈정거림'속에 탄생했다. 역설적이게도 당대의 비평가들이 열광했던 작가들 중에 후대에까지 그 평판을 유지한 인물은 많지 않다. 우리 나라의 대표작가로 알려진 박수근이나 이중섭도 생전에는 비평가들로부터 호의적인 평가를 받지 못했다. 작가들에게 있어 비평가들의 비판은 환영할 일이지 두려워할 일이 아니다. 미술판에서도 토론공화국이 구현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