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까지 버티면 얻는 것도 크다'. 조흥은행 노조는 전산망이 마비 직전까지 몰리고 점포가 절반 이상 문을 닫는 등 역대 은행 파업 중 가장 강도 높은 파업을 통해 사실상 원하는 모든 것을 손에 쥐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물론 노조가 주장했던 매각 철회는 관철하지 못했지만 공적자금관리위원회가 이미 매각을 승인한 마당에 정부나 신한금융지주가 수용하기는 불가능한 요구조건으로 협상장 주변에서는 진작부터 반드시 `협상 전략용'이라는 딱지가 붙은 터였다. '3년간'이라는 꼬리표가 붙기는 했으나 조흥은행은 독자 경영과 고용 보장, 단계적 임금 인상이라는 확실한 실리를 챙겼고 통합 이후에도 고용을 보장받을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통합추진위원회와 지주회사의 임원진에도 신한지주와 동수로 들어가 조흥은행쪽의 의사를 충분히 반영할 길을 텄고 '조흥'이라는 상호도 계속 쓸 수 있게 됐다. 신한은 '주인'으로서 통합을 무리없이 추진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파업할수록 조흥은행이 껍데기만 남게 된다는 절박함이 있었겠지만 피합병 은행의 노조에 이 정도까지 양보했다는 것은 상당히 파격적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와 금융계 일각에서는 이처럼 노조의 요구를 전폭 수용하고서 어떻게 통합의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수 있을 지에 의문을 표시했다. 은행 합병은 덩치를 불려 규모의 경제를 실현한다는 측면도 무시할 수 없지만 불필요한 조직과 인력, 시설을 줄여 비용을 최소화해야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은 구조조정의 가장 기본적인 상식에 속하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여러 차례 은행 파업이 있었으나 조흥은행만큼 실리를 제대로 챙긴 사례는 없었다. 지난 1998년 9월 추석을 앞두고 금융산업노조는 국제통화기금사태(IMF) 이후 은행 구조조정에 반발, 공적자금이 투입된 은행권의 총파업을 추진했으나 은행들끼리 행동 통일이 이뤄지지 않은 데다 공권력 투입에 대한 불안과 여론 악화에 쫓겨 파업결행 한 나절만에 합의서에 도장을 찍고 말았다. 은행 경영진과 금융노조가 합의한 내용은 ▲1997년 말 대비 인원 32% 감축 ▲퇴직 위로금 9∼12개월치 지급 ▲파업에 대한 민.형사상의 책임 추궁 면제 등이었다. 노조는 2000년 말까지 25∼30%의 연차적인 인력 감축안을 고집했고 사측은 97년말 대비 33%의 감원을 98년 말까지 시행한다는 입장이었으나 공적 자금 투입 은행들에 대한 국내외 투자자들의 구조조정 압력에 밀려 결국 32% 감원으로 낙착됐다. 2000년 7월에도 금융노조는 정부의 금융지주회사제 도입에 반발해 ▲관치 금융청산 특별법 제정 ▲금융지주회사제 유보 ▲구조조정시 강제 합병 중단 ▲관치 금융에 의한 부실 채권 전액 정부 매입 등을 내걸고 총파업을 선언했다. 하지만 하나, 한미, 신한, 제일은행 등이 파업 방침을 철회하는 등 공적자금 투입은행과 우량은행, 국책은행과 일반은행, 지방은행과 시중은행의간 이해 관계가 엇갈려 총파업일로 선언된 7월11일에 실제로 파업에 돌입한 은행은 없었다. 파업이 지지부진하자 노조는 ▲관치 금융 근절 의지의 총리령 명문화 ▲노조가 관치에 의한 부실로 주장하는 러시아 경협차관 13억달러와 예금보험공사 대출금 4조원 등 6조원 연내 해소 ▲공자금 투입 은행이 금융지주회사에 편입될 경우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 10%를 유지할 수 있도록 증자, 후순위채 매입 지원 등을 얻어내는 선에서 타협하고 말았다. 2000년 12월에는 국민은행과 주택은행 노조가 합병에 반대해 크리스마스를 전후의 7일 동안 파업을 벌였으나 공권력 투입으로 별 성과 없이 막을 내려야 했다. 국민은행과 주택은행 노조가 얻은 것은 인력 구조조정 등을 자제하고 노조원들에게 파업에 따른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정도의 정부 약속이 고작이었다. 하나은행과 서울은행은 작년 11월 인력 구조조정을 강제로 하지 않은 데다 급여대폭 인상 등으로 서울은행원들의 마음을 잡아 아무 불상사없는 `합방'에 성공했다. 서울은행 노조는 매각 철회, 완전 고용 보장, 즉시 대등 합병 등의 무리한 요구를 내걸지 않았고 파업을 시도하지도 않았다는 게 이번 조흥은행 사태 때와는 다르다면 다른 점이다. (서울=연합뉴스) 김종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