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사람과 달리 끊임없는 변화와 부단한 혁신으로 생명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인류의 건강에 이바지하는 영원한 보령그룹을 만드는데 여생을 바치겠습니다." 김승호 보령제약주식회사 회장(71)은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아픈 이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의무라는 생각을 하며 평생을 살아왔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그는 "한때 임원들로부터 건설업에 진출하자는 제안을 받은 적이 있지만 제약업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생각에 거절했다"며 "최대가 아닌 최고의 기업을 만드는게 목표"라고 강조했다. "규모가 아닌 질(Quality)로 승부하겠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3평짜리 약국에서 출발,46년만에 보령을 6개의 계열회사를 거느린 중견 제약그룹으로 키워내기까지 '약'과 떼어 놓을 수 없는 인생을 살아왔다. 어려서부터 그에게는 '약'이 친구였다. 부친의 사업실패로 형이 보령군 웅천면 신작로가에 대창약방을 열자 그 곳을 놀이터 삼아 놀았다. 약과의 인연은 계속됐다. 사촌 형이 운영하던 종로5가 홍성약국의 2층 다다미방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다. 6ㆍ25때 장교로 군 복무를 한 뒤 사업가로 나섰다. 홍성약국에서 5개월간 실무경험을 쌓은 그는 신혼 집을 팔아 마련한 돈으로 1957년 10월1일 고향 이름을 딴 '보령약국'을 열었다. 이때부터 그의 능력이 발휘된다. 손님이 원하는 약이 없을 때는 자전거를 타고 하루종일 서울 시내를 돌아다녀 약을 구해줬다. "신뢰와 성실은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약업인이 갖춰야 할 기본자세이지요." 김 회장이 늘 마음속에 새기고 있는 경영철학이 바로 여기에 담겨 있다. 보령약국은 개업 5년만인 지난 1962년 국내 최대 규모의 소매약국으로 성장했다. 의약품 제조업 진출을 모색하던 김 회장은 부산의 동영제약을 인수, 4년 뒤 이름을 보령으로 바꿨다. 보령의 첫 작품은 용각산. 이 약은 대히트를 쳤다. 보령제약의 오늘을 있게 한 원동력이 됐다. 이어 겔포스엠, 구심, 솔박타 등 20∼30년간 인기를 끈 스테디셀러 약품들을 잇따라 선보였다. 시련도 있었다. 1977년 7월8일 '30년만의 최대 규모'라는 폭우가 보령제약 안양공장을 휩쓸었다. 안양공장은 당시 제약업계 단일 공장으로서는 가장 큰 규모였다. 풀가동하던 겔포스 라인 등 전 생산라인이 물에 잠겼다. "업계에선 '보령은 이제 끝났다'라는 얘기도 돌았습니다. 하지만 임직원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한 덕분에 1년으로 예상됐던 복구작업을 4개월 만에 마쳤습니다." 고희가 넘은 김 회장이지만 의욕은 어느 젊은이 못지 않다. 그는 "보령은 건강에 관한 제품 서비스를 종합적으로 제공하는 토털 헬스케어그룹을 지향하고 있다"며 "보령제약 보령메디앙스 보령바이오파마 비알네트콤 ㈜보령 킴즈컴 등 6개의 계열사는 이같은 목표를 위한 큰 그림 아래 설립됐다"고 설명했다. 이런 계열사들을 바탕으로 의약품 의료기기 건강식품 유아용품 생활용품뿐 아니라 탯줄혈액(제대혈)을 기반으로 한 줄기세포 제품, 노인들을 위한 실버제품 개발에도 역점을 둘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보령의 창업 반세기를 앞둔 지난 1999년 10월 잠실 올림픽 경기장에서 열린 창립기념식에서 보령그룹의 21세기 비전으로 'NEO21'을 제시했다. NEO에는 새롭게(Newly), 빠르게(Early), 으뜸으로(Only)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서울 원남동 보령빌딩 1층 현관로비에 'NEO21 타임캡슐'이 있다. 그룹비전과 사별 경영목표가 담긴 CD와 디스켓이 담긴 이 캡슐은 2005년 1월1일 개봉된다. "이 캡슐에는 21세기를 향한 보령의 꿈과 희망, 나 자신의 약속이 담겨 있습니다. 캡슐을 여는 그 날 부끄럽지 않도록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아갈 것입니다." 김 회장은 "손님이 찾아달라는 약을 구하기 위해 자전거 페달을 밟고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던 40여년 전의 마음가짐을 간직하고 실천하겠다"고 다짐했다. 송대섭 기자 dss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