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이 총파업의 먹구름에 휩싸여 있다. 참여정부가 들어선 이래 유난히 많은 집단행동이 있었지만 이번 총파업은 양대 노총이 동시에 계획하고 있는 것이어서,그리고 그간 정부의 대응방식으로 볼 때 사회 경제적으로 큰 피해를 줄 수 있어 걱정된다. 무엇보다 최근 일련의 파업사태는 우리로 하여금 파업을 당연한 노동3권의 행사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파업의 의미와 파업주도층의 의도에 대하여 심각한 의문을 갖게 한다. 노동계가 총파업의 요구조건으로 내건 사안들을 보면 개별사업장이나 근로자 일반의 권익과는 관계가 멀다. NEIS 관련 교육부와 전교조의 합의를 이행하라든지, 경제자유구역법을 폐지하라든지 하는 것들이다. 또 근로자로 볼 수 없는 자영사업자에게 노동3권을 보장하라는 요구도 들어있다. 파업 방식을 보면 단체교섭 결렬에 따른 행동이 아니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정해진 절차를 밟는 공격형태다. 중앙에서 제시한 일정에 따라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거쳐 정해진 날짜에 총파업을 하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다른 노동단체 및 시민사회단체와 연대하여 투쟁하도록 지침을 내리고 있다. 이른바 시기집중 및 연대투쟁의 전략을 사용해 대정부, 대자본에 대한 압박을 극대화한다는 것이다. 노동계의 이런 파업 움직임을 보면 우리가 이해하는 노동3권 행사와는 크게 차이가 있음을 느낀다. 본디 노동3권은 사용자에게 지배 종속되어 있다는 전제하에 부당한 대우에 대항하도록 근로자에게 부여된 '방어적 권리'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노동3권은 방어적 권리가 아니라 '공격적 권리'로 변질되었다. 사용자에 대한 단결권이 아니라,자영사업자끼리 조합을 만들어 이익을 극대화하는 단결권이 되었다. 화물연대가 대표적인 예다. 근로조건에 대해 교섭하는 단체교섭권이 아니라, 기업경영에 대해 공동 의사결정을 요구하는 단체교섭권이 되었다. 조흥은행 매각반대가 그 예다. 그리고 근로조건을 확보하기 위한 단체행동권이 아니라 정치적 힘을 행사하는 수단으로서의 단체행동권이 됐다. 전교조의 집단행동이 그 예다. 노동3권은 헌법에 보장된 권리다. 그러나 본질이 훼손되어서는 곤란하다. 노동3권은 특별한 관계를 가정하여 부여된 특별한 독점권리다. 따라서 그 독점적 권리를 행사하는 데는 요건이 충족돼야 한다. 특히 파업권의 행사에는 엄격한 제한이 필요하다. 파업행위는 생산활동을 중지하고 자원들을 방치하는 경제적 낭비행위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파업은 제3자에게 피해를 준다. 이번 총파업이 예정대로 실시된다면 시민들은 지하철을 못타 걸어다녀야 할 판이고,학생은 선생님 없는 교실에서 자습해야 할 판이다. 정치적 목적의 파업은 경제적 비효율성을 야기할 뿐만 아니라 도덕적 정당성도 갖지 못한다. 이번 총파업은 그 어느 쪽도 만족시키지 못한 채 국민경제에 피해만 주고 끝날 가능성이 높다. 내건 요구조건들을 우리 경제여건상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근로조건 저하 없는 주5일제 입법은 현실과 거리가 멀다. 지금 경제상태는 근로시간이 문제가 아니라 일자리가 문제다. 기왕에 주5일제를 하던 한 신용카드회사 노조는 일자리 유지를 위해 자발적으로 토요휴무를 반납했다. 외국의 언론과 신용기관들은 지금 우리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두산중공업 철도파업 및 화물연대 사태 등으로 우리 경제의 대외 신뢰도는 추락 직전에 있다. 총파업에 굴복하여 조흥은행 매각이 지연되거나 비정규직에 대한 규제가 강화된다면, 우리 경제는 대내외적으로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입을 가능성이 높다. 동북아 비즈니스 허브 구상은 공염불이 되고, 기업들은 더욱 자신을 잃어 투자를 주저할 것이다. 성장이 둔화되고 실업이 늘어나는 암울한 터널로 들어갈 수 있다. 정부는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해야 한다. 안이하게 대화와 타협만 내세우는 '중재자'에서 벗어나, 룰 위반에 대해 단호히 경고하고 퇴장을 명하는 '심판자'가 되어야 한다. 명분도 없고 실리도 없는 파업을 정치적 목적으로 시도하는 노조에 대해 냉정하게 비판하는 시민의식도 필요하다. 심판이 시원치 않을 때는 부당행위에 대한 관중들의 야유가 억지력을 발휘할 수도 있으니까. < sina@sogang.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