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일본 마쓰다의 전신인 동양공업은 삼륜 자동차를 생산하는 소규모 자동차 제조회사였다. 당시 47명의 엔지니어를 중심으로 로터리엔진 개발을 비밀리에 진행하고 있었다. 가족을 포함한 다른 사람에게 개발내용을 일절 발설하지 않겠다고 서약서까지 썼다. 67년 드디어 세계 최초로 로터리엔진을 탑재한 코스모 스포츠 쿠페를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1년간 판매실적은 겨우 3백43대에 불과했다. 마쓰다는 주저앉지 않았다. 일본보다는 고속도로망이 발달된 미국에서 로터리엔진의 진가를 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겨 70년부터 미국에 수출하기 시작했다. 73년에는 12만대가 판매될 정도의 대성공이었다. 73년 발생한 오일쇼크로 로터리엔진 차는 가솔린을 엄청나게 잡아먹는 차로 몰렸다. 하우징과 로터라는 간단한 구조로 회전운동을 하는 로터리엔진은 고출력 고회전이라는 장점을 가지고 있는데 반해 같은 배기량의 일반 엔진에 비해 연비가 좋지 않은 단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쓰다가 도산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코헤이 마쓰다 사장은 언론에 '2년 뒤 로터리엔진의 연비를 40% 향상시키겠다'고 선언했다. 그렇게 해서 등장한 것이 78년 3월 시판된 사반나 RX-7모델이었다. 유럽의 스포츠 카보다 가격이 싸면서 본격적인 스포츠카 성능을 갖춘 이 차는 일본과 해외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1천1백46cc의 작은 배기량으로 1백20마력이라는 당시로서는 굉장한 파워를 발휘했다. 미국에서는 기존 판매가격에 6천9백달러에서 3천달러까지 프리미엄이 붙었다고 한다. 작은 배기량에 강한 파워의 로터리엔진 차는 매력적이다. 다만 연비가 떨어지는 결점으로 인해 아직까지 세계에서 유일하게 마쓰다에서만 생산되고 있다는게 한계다. 김상권 < 사장/현대ㆍ기아자동차 연구개발본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