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영화 주인공 중 최고의 영웅으로 꼽히는 인물은 엄청난 액션물의 스타가 아닌 그레고리 펙이 열연한 '앵무새 죽이기'(1962년ㆍ국내 상영 제목은 '앨라배마에서 생긴 일')의 주인공 에티커스 핀치라고 한다(미국영화연구소). 핀치는 인종차별 의식이 심한 시골마을에서 백인소녀를 성폭행했다는 누명을 쓴 흑인청년을 돕는 변호사.펙은 이 역할로 63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53년 '로마의 휴일'의 낭만적인 사진기자,'앵무새 죽이기'의 따뜻하고 용기있는 시골변호사로 세계인의 마음에 깊이 새겨진 세기의 미남배우 그레고리 펙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다. 펙은 1916년 약사의 아들로 태어나 캘리포니아대에서 의학을 공부하다 영문학으로 전공을 바꿨다. 44년 '영광의 나날'로 데뷔한 뒤 '케이프 피어' '아라베스크' '신사협정' 등 수많은 영화에서 다양한 역을 소화,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5차례, 주연한 영화 9편이 최우수작품상 후보에 오르는 영예를 누렸다. 뿐만 아니라 60세가 넘어서도 '브라질에서 온 소년들'(78년) '올드 그링고'(89년) '백경'(98년) 등에 출연함으로써 할리우드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렸다. 또한 54년 재혼한 뒤 50년 가까이 스캔들 한번 없는 모범적인 가장으로도 유명했다. 펙은 미남의 상징이었다. 1백89cm의 당당한 체구,흠잡을 데 없이 잘생긴 이목구비,지적이고 점잖은 행동거지,여유있고 부드러운 시선으로 여성은 물론 남성들까지도 사로잡았다. 물론 오늘날의 미남 기준은 선 굵은 펙과 달리 '꽃미남'으로 통칭되는 작고 예쁜(?) 얼굴이지만 그래도 펙의 듬직하고 세련된 모습은 중장년 팬들의 머리에서 오래 떠나지 않을 게 틀림없다. 80세가 넘을 때까지 현역으로 뛰던 펙이 2000년 고별무대에서 했다는 말은 영화인이 아닌 보통사람들에게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언제나 완벽한 영화를 만드는 꿈을 지녔고,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면 반드시 기회가 온다고 믿었다. 나이에 구애받지 않으며 죽음도 생각하지 않는다. 남은 시간 동안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들을 할 뿐이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