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는 전쟁 중에 제한적인 의료인력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불문율을 갖고 있다. 전장에서의 부상자를 세 부류로 나누는 제도다. 첫째 부류는 부상이 경미해서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부상자들이다. 이들에게는 간호사만 보낸다. 두번째 부류는 부상의 정도가 심해서 의사가 치료를 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태로운 경우다. 이 때에는 의사를 보낸다. 세번째 부류는 부상의 정도가 너무 심해서 치료해도 목숨을 구할 수 없는 경우다. 이 때에는 성직자를 보내 그들의 영혼을 위로할 뿐이다. 전쟁이 시작되기 전 모든 병사들은 이 규칙을 받아들인다. 자기가 어떤 부상을 당하게 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이 규칙이 부족한 의료인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이고,또 그것이 자신에게 가장 유리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왜냐하면 만일 자기가 의사의 치료만 있다면 목숨을 구할 수 있는 데도 의사가 오지 않아 목숨을 잃게 될 경우가 가장 억울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규율은 철저히 지켜져 왔다. 사전적으로 합의한 규칙을 지키는 것이 제한된 의료인원을 최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 제도는 우리에게 두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우선 모든 법제도는 이해관계가 구체화되기 전에 사전적으로 규정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미래에 내가 어떤 입장에 놓이게 될지 모르는 상태에서만이 공정하고도 효율적인 법제도에 합의하게 됨을 말해 준다. 둘째로 정해진 법질서는 반드시 지켜져야만 효율적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이다. 섣불리 동정심이나 위협에 밀려 적당히 조정하려 한다면 결국 원칙이 손상되고 애초에 의도된 목적은 이룰 수 없게 될 것이다. 오늘날 많은 이익집단들의 이익추구행위가 우리 사회에 큰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이에 대응하는 정부는 이 두가지 시사점을 모두 무시하고 있다. 우선 법과 제도를 만듦에 있어 정부가 사전적으로 불편부당한 입장에서 문제를 보기보다는 과도하게 이익집단의 요구를 고려한다. 입법단계에서 해당되는 이익집단의 입장보다는 국민 전체의 공익이 우선시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지난 정권이 추진한 의약분업제도의 수립과정에서 두 이익집단의 자기이익 주장만을 보아 왔지 진정한 공익이 거론되는 것을 거의 보지 못했다. 결국 국민전체의 후생보다는 두 이익집단의 이득만 증대된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는가? 우리는 가끔 내각의 장관들이 담당부문의 이익만을 대변하고 있음을 본다. 예컨대 농림부는 농민만을 고려하고,산자부는 기업인만을 대변하며,노동부는 노동자만을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분명한 것은 각 장관들은 해당분야에서 국민전체의 후생을 고려해 해당분야의 정책을 다른 분야와 조화시켜 나가야 할 임무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사회에서 이익집단의 자기 이익추구행위가 우리 사회를 크게 혼란시키는 또 다른 이유는,주어진 법질서를 무시하고 비법치주의적인 조정행위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데 있다. 정부가 법에 의존하기보다 정치적 조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경우 이익집단들은 보다 더 강하게 목소리를 내려 할 것이다. 법을 위반해 사회적으로 손실을 끼치겠다는 위협이 정부의 양보를 받아내는 수단이 되어지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모 부처 장관의 "약자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위법과 불법도 괜찮을 수 있다"는 발언은 이러한 현상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 아닐까? 장관은 법을 집행할 권한은 있으나 법을 위반할 권한은 없다. 법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국회에 제안해 법을 개정한 후 법에 의해 정책을 집행해 나가야 함은 기초상식이 아닐까? 노사 대립을 정치적으로 조정해 보겠다는 의도로 구성된 노사정위원회도 그 실효성이 의심이 되며,오히려 법에 의한 정책수행에 악영향을 주게 될 것이므로 폐지되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전장에서 부상자들이 무조건 의사를 요청하듯이,민주사회에서 이익집단들이 자기 이득을 추구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이들의 요구가 사회전체의 후생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법제도를 사전적으로 만들어 내고 이를 엄격히 집행해 나가는 것이 정부 역할임을 재삼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yslee@yonse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