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ㆍ미 투자협정(BIT) 체결의 최대 관건인 스크린 쿼터(국산영화 의무상영일수)를 둘러싼 논란은 문화예술뿐만 아니라 한미간 통상 및 외교문제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 생각해볼 문제다. 그런 점에서 영화감독 출신인 문화관광부 장관이 직접 나서서 '양보 절대불가'를 주장하고 있는 건 옳다고만은 보기 어렵다. 스크린쿼터는 1967년 극장들이 이윤을 좇아 한국영화를 홀대하는 걸 막기 위해 시작된 제도다. 축소 문제가 거론되기 시작한 건 환란 직후인 98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한ㆍ미 정상회담의 의제로 BIT를 제시하자 미국 측에서 한국영화 의무상영 일수를 연간 1백46일에서 73일로 줄여줄 것을 요청하면서부터다. 이같은 요구는 그러나 영화계의 강한 반발에 부딪쳤고 결국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이 40%를 넘을 때까지 유예하게 됐다. 그러다 2001년 46.1%에 달한 것을 계기로 지난해 다시 불거졌으나 영화계의 거듭된 반대로 결국 DJ정부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참여정부로 넘겨졌다. 시장점유율 40% 상회는 장기간 평균지표로 산출됐을 때 의미가 있고,스크린쿼터제는 할리우드영화의 독점에 대응,우리 문화의 정체성과 다양성에 대한 보호장치인 만큼 단순한 산업적 잣대로 좌우할 수 없다는 얘기다. 물론 일리있는 주장이다. 그러나 한·미 투자협정은 한국의 대외 신인도에 연관된 문제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미국과 BIT를 체결한 90여 개국에 우리가 빠져 있다는 건 최근 외국인의 직접투자(FDI) 급감과도 무관하다고 하기 힘들다. '문화주권' 수호라거나 한번 밀리면 계속 밀릴 테니 '하루도 못줄인다'는 식의 강경 논리만 되풀이할 게 아니라 양보할 건 양보하고 얻을 건 얻는 전략을 수립하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축소 규모와 시행 시기를 정하고 대신 미국측에 요구할 수 있는 사안들,국내 영화인의 미국 연수나 우리 영화의 미국내 배급로 개척 및 확대,수출 증진 등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방안을 강구하면 될 것이다. 대안 없이 한발도 양보를 못한다고 버티다가 갑자기 무너지면 아무 것도 얻지 못한채 그대로 내줄 수도 있다. 지금 한·미관계에서 가장 필요한 건 '신뢰'다. 우리 문화예술 보호도 좋지만 더 큰 국익을 위해 문화부장관이나 영화계 인사 모두 일정한 선에서 절충하는 자세를 보여주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