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여년간 '유통 황제'로 군림해온 롯데의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 회계 기준이 바뀌면서 매출 1위를 신세계에 내줬고 할인점 부문에서는 이마트는 물론 홈플러스에도 뒤져 3위로 내려앉았다. 편의점 세븐일레븐은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롯데쇼핑은 올 1·4분기 매출에서 처음으로 신세계에 뒤졌다. 백화점 매출을 판매금액 대신 입점업체로부터 받는 수수료 기준으로 계산토록 한 정부의 새 회계 기준 때문이다. 롯데는 신세계(1조3천9백70억원)보다 5천억원이나 적은 8천8백87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데 그쳤다. 유통업계 맏형 자리를 신세계에 넘겨줄 수밖에 없게 됐다. 할인점 부문에서는 위상이 더 초라하다. 롯데마트는 지난해 삼성테스코의 홈플러스에 추월당해 3위로 추락했다. 경영진은 "2005년까지 2위를 탈환하자"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아무도 확신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홈플러스에 비해 영업면적은 훨씬 넓은데도 평당 효율에서 뒤지고 있다는 사실을 직원들도 잘 알기 때문이다. 롯데마트 점포는 현재 30개. 이 가운데 흑자 점포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운영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않아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롯데마트는 할인점 사업 초기부터 점포를 늘리는 데만 매달렸다. 저비용 경영을 가능케 하는 시스템 구축은 우선 순위에서 밀렸다. 편의점 사업에도 허점이 많다. 대표적 프랜차이즈 사업인 편의점은 극소수 직영점을 빼고는 가맹점으로 꾸려가는 게 정석이다. 그러나 롯데의 세븐일레븐은 가맹점 비율이 전체 점포의 10%에 불과하다. 나머지 90%는 본사가 직영하거나 매장을 얻어 위탁경영자에게 넘겼다. 이러다 보니 지난해 적자가 무려 1백64억원에 이르렀다. 토종 편의점인 LG25가 3백억원의 흑자를 낸 것과 사뭇 대조적이다. 인터넷몰 롯데닷컴과 슈퍼마켓 롯데레몬 사업도 지지부진하다. 롯데닷컴은 선발주자인데도 후발주자들에 끊임없이 추월당하고 있다. 롯데레몬 슈퍼는 존재 자체가 미미한 실정이다. 그렇다고 백화점이 다른 부문을 만회할 만큼 많은 이익을 내줄지도 지극히 불투명하다. 백화점 시장은 이미 성숙기를 지나 내리막길을 눈앞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롯데그룹의 후계자로 지목되고 있는 신동빈 부회장의 입지는 한층 취약해졌다. 그가 주도한 편의점 슈퍼마켓 인터넷몰 사업에 대한 안팎의 평가는 F학점을 간신히 면한 수준이다. 특히 일본인 임원을 중용했던 그의 인사 정책은 실패로 끝났다. 세간의 추측대로 신 부회장이 롯데그룹을 이끌어간다 해도 조직을 제대로 장악할지 의문스럽다는 얘기도 나온다. cd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