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영화 '살인의 추억'이 화제다.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을 소재로 다룬 이 영화는 지난달 25일 개봉 이후 매일 10만명의 관객이 상영관을 찾고 있다. 개봉 22일 만에 3백만명 관람 기록을 세웠고 현재 4백만명 기록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역대 흥행 1위인 '친구'(8백20만명)에 이어 '쉬리''공동경비구역'(6백만명)과 2위 다툼을 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전망이다. '살인의 추억'은 국내 최대의 영화제작사 싸이더스가 만들었다. 차승재 대표(43)는 지난 8년간 '비트''8월의 크리스마스''유령''무사' 등 모두 27편을 내놓았다. 한 해에 3∼4개 작품을 생산한 셈이다. 그러나 흥행성보다 작품성을 먼저 고려하는 그의 고집때문에 역대 흥행 '톱10'에 들어간 작품은 없다. '톱10'은 커녕 흥행 실패로 회사문을 닫을 위기까지 간 적도 있다. 지난해 말과 지난 4월 초 개봉했던 영화 '로드무비'와 '지구를 지켜라'는 42명의 싸이더스 식구들을 생사의 기로로 몰아세운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살인의 추억'은 작품성과 흥행성을 동시에 갖췄다는 게 중론이다. 물 흐르듯 전개되는 스토리와 사실감 넘치는 대화는 보는 이로 하여금 '사건의 세계'로 빠져들게 한다는 평이다. "그동안 세월을 헛되게 보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리고 있어요." 서울 강남구 삼성동 본사에서 만난 차 대표는 흥행의 기쁨에 앞서 지난 날의 역경이 생각나는 듯 회상에 잠겼다. '살인의 추억'이 탄생하기 까지는 제작자의 험난한 수업과정이 있었다. 차 대표의 영화 인생은 1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한국외국어대 불어교육학과)을 졸업한 그는 처음에 카페사업과 의류사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국내 경기도 괜찮아 4년동안 제법 돈을 모았다. 그러나 부동산거래를 하는 과정에서 사기를 당해 모은 돈을 모두 날리고 말았다. 실업자가 된 그는 우연한 기회에 영화 '화산고'의 연출자 김태균 감독을 만나게 된다. 김 감독은 정외과 출신으로 대학시절부터 가깝게 지내던 사이였다. 당시 장현수 감독의 영화 '걸어서 하늘까지'의 프로듀서직을 맡고 있던 김 감독은 친구 차승재에게 제작부장직을 제의했고 차승재는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개런티 1천만원을 받고 제작을 맡았습니다.그런데 김 감독이 개인사정으로 다른 프로젝트를 떠맡는 바람에 사실상 총책이 됐지요." 영화에 관심이 많았던 차 제작부장은 열심히 일했다. 그 당시 촬영현장의 프로듀서들은 '주먹'출신의 중년들이 대부분이었다. 때문에 대학을 나온 젊은 차승재의 성실한 모습은 업계의 관심을 끌었다. 그러던 중 그는 '90년대 한국영화의 3대 제작자'로 불리던 신철,유인택,안동규씨의 눈에 띄게 된다. 이들은 차승재에게 현장 프로듀서 제의를 한다. 영화제작인의 꿈을 그리던 그로서는 큰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