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까지만 해도 경기과열을 걱정했던 우리 경제가 이라크 전쟁과 북한 핵개발 문제 등 외부 요인에 의해 흔들리기 시작하더니,카드채 문제와 SK글로벌 분식회계 등 국내문제에 의해 그 심각성이 더해지고 있다. 물류대란을 일으켰던 화물차연대 파업 등 최근의 노사분규는 침체되고 있는 경제에 어려움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이러한 어려운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경기부양 논의가 제기되자 일부에서는 '개혁의 후퇴'라는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 과연 경기부양은 개혁의 후퇴일까. 개혁과 경기부양을 이분법적인 시각에서 상호 배타적인 것으로 보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개혁과 부양은 성장잠재력을 확충해 우리 경제의 장기 안정적인 성장,발전을 위한 필수적인 두 수단이기 때문이다. 개혁의 목표는 '우리 경제의 경쟁력 강화를 통해 안정적인 성장을 지속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개혁은 시간표를 정해두고 일정 기간에 마무리하는 개념이 아니고,계속해서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찾아 해결해 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죽어 가는 환자를 수술하여 살리기 위해서는 수술을 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기초체력을 보강해주어야 하듯이,개혁에 성공하여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성장이 뒷받침될 수 있는 경기부양이 이루어져야 한다. 물가를 자극하지 않고 달성할 수 있는 적정성장률을 잠재성장률이라고 한다. 경기 부침에 따라 실제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을 크게 하회할 경우 실업률이 높아져 사회 안전망이 불충분한 우리나라에서는 많은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 이 때 정책당국은 재정과 금융이라는 두 경기부양 수단을 통해 급격한 성장률 저하로 인한 사회 불안 심리를 해소해 주어야 한다. 경기가 너무 과열되면 이 두 수단을 적절히 활용해 경제를 안정시켜야 하듯이,경기가 지나치게 침체되면 경기부양책을 써 적정성장률을 달성하게 하는 것은 정책당국의 책임이자 의무일 것이다. 일부 경제주체들은 경기가 어려우니 개혁을 일시적으로 유보하고 강력한 경기부양만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들은 개혁조치를 마치 정부의 규제로 여기고 무조건 저항하려 한다. 그러나 지속적인 개혁 없는 경기부양은,죽어 가는 환자에게 근본적인 치료는 하지 않은 채 링거주사만 놓는 것과 같을 뿐이다. 링거주사는 일시적으로 환자에게 힘을 솟게 할지 모르나 궁극적인 환자의 치유책은 되지 못한다. 이제 우리 경제도 과거 개발경제 시대처럼 안정을 도외시한 채 성장률만 높일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안정이 뒷받침되지 않는 성장이란 모래 위에 쌓은 성일 뿐이다. 그렇다고 성장을 도외시하고 안정만을 강조할 수 있는 그런 한가한 시기도 아니다. 최근 세계은행(IBRD)이 발표한 세계경제지표(World Economic Indicators 2003)에서 본 '세계 속의 한국경제(2001)'는 1인당 GNI(국민총소득)가 9천4백69달러로 세계 54위에 불과하다. 우리의 경쟁국인 홍콩의 2만5천3백30달러,싱가포르 2만1천5백달러에 비해 우리 수준은 절반에도 못 미친다. 한가지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할 내용은,남미 아르헨티나의 1980년 1인당 GNI가 7천5백달러였으나 2001년 말 6천9백40달러에 머무르고 있다는 점이다. 반면 일본과 싱가포르 등 주요 선진국은 1만달러에서 2만달러에 이르는데 10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남미국가들이 1만달러 이상의 선진국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중진국에 머물고 있는 공통요인을 살펴보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스스로의 자만과 장밋빛 환상 속의 거품,개혁되지 못한 경제구조,정치논리가 경제논리를 지배하는 관행,뿌리깊은 부정부패 등이 남미경제를 좌절시킨 요인들이다. 작금 국내에서 전개되고 있는 상황이 바로 남미국가들이 반복하고 있는 악순환을 닮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든 경제 주체들이 냉정하게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중단 없는 개혁을 수행하면서 경기 상황에 따라 적절한 정책 대응을 하는 것이 안정의 기반 위에 지속적인 성장을 달성할 수 있는 첩경임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wychoi@bok.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