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멀다 하고 대형 분쟁이 터지고 있다. 얼마 전에는 국민들이 철도파업과 교통대란의 위기 때문에 마음을 졸였는데,이번에는 산업계가 화물차 파업과 물류대란으로 시달리고 있다. 화물차 파업사태가 보다 심각하게 보이는 것은 경제의 동맥이 마비됐다는 이유만은 아니다. 혼란스러운 정부의 의사결정을 보면 앞으로도 유사한 대란이 계속 터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화물운송 거부를 수수방관한 장관들을 질책하고 대책마련을 지시한 후에야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대통령의 지시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취할 수밖에 없는 조치들인데 정부는 시간만 끌다가 뒤늦게 행동에 나서게 됐고,관련 부처간의 공조 역시 그제서야 작동하기 시작했다. 사실 불법 파업에 대한 사법처리와 공권력의 발동이나 화물운송제도의 개선은 대통령의 결심이 필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이번 화물운송 분쟁이 터지기까지의 과정을 보자.화물연대는 진작부터 운송요금 현실화나 운송의 하도급 관행 개선 등 화물운송 시장을 개선해 줄 것을 요구해왔다. 그러나 정부는 시큰둥한 반응만 보였다. 이것은 화물차주들을 격분하게 만들었고,각지에 흩어져 있는 화물차주들은 하나로 모여 파업에 동참하게 됐다. 정부와 관련된 공공분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나타난다. 우선 정부는 이익집단이 어떤 요구나 주장을 하면 처음에는 제대로 대화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문제가 심각할 조짐이 보이면 대안을 모색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익집단은 이미 파업사태에 돌입하게 되고,위기상황 속에서 정부는 협상에 나서게 된다. 그 결과 정부는 이익집단의 요구나 주장을 대부분 수용하게 된다. 또 이러한 정부의 의사결정은 처음에는 정책논리에 따라 이루어지다가 나중에 가면 정치논리에 따르고 있다. 화물차 파업사태에서는 이러한 잘못된 관행 외에 새로운 문제점까지 드러났다. 과거에는 이 정도의 위기가 발생하면 적어도 정부가 신속하게 움직이기는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부 스스로 혼란에 빠져 분쟁의 해결이 지연됐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장관이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문제 해결의 방향도 잡고 있지 못했을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최근에 나타난 정책의 변화를 보면 장관들이 몰랐다기보다는 대통령의 눈치를 살피느라고 시간을 끌었을 가능성이 오히려 높아 보인다. 대통령은 화물파업을 노동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할 지 모르지만,장관은 물론 관료들은 노동문제로 받아들였을 법하다. 그렇다면 화물파업의 해법도 노동조합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했던 두산중공업과 철도파업의 연장선에서 찾으려고 했을 것이다. 또 대통령이 분쟁 해결의 전문가로 자임하고,분쟁이 있으면 직접 나서겠다는 의사를 밝혀 왔기 때문에 장관이 적극적으로 나서기는 더욱 어려웠을 것이다. 이번 화물파업을 계기로 정부는 분쟁해결 관행의 문제점을 점검해야 한다. 우선 대통령과 장관,청와대의 핵심 참모들은 이런 혼란이 왜 발생하게 됐는지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나누어야 한다. 분쟁해결에 관한 법 제도나 정책상의 문제는 물론 대통령과 정부의 역할 및 권한,부처간의 공조체제와 관료들의 의식에 관한 문제까지 점검하고 개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또 분쟁의 해결 방법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의식을 점검하고,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나서야 한다. 한편으로는 바람직한 분쟁해결의 관행을 공론화시켜 국민들의 공감대를 모으고,다른 한편으로는 국민들을 설득하면서 분쟁해결의 규범을 정립해 나가야 한다. 동시에 분쟁을 효과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시스템을 개발하고 기존의 시스템은 개선 보완해야 한다. 특히 법 집행의 공정성과 일관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는 것은 한시가 급한 당면과제다. 여기에 분쟁해결의 전문가를 양성하고 국민들의 의식 개선을 위한 방안이 뒤따라야 한다.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갈수록 갈등과 분쟁이 많아지고 있는데,힘의 논리로만 해결방안을 찾다보면 그 양상이 과격해진다. 잘못된 분쟁해결 관행을 지금 개선하지 못하면 사회구성원간의 신뢰가 붕괴하고 국가의 위기가 초래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gotgk@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