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WALL STREET JOURNAL 본사 독점전재 ] 사스(SARS·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 피해가 확산되면서 중국에서 경제적 손실과 인명 피해가 속출,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하지만 중국 정치 지도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대상은 사스가 아니다. 그들이 걱정하는 대상은 오래된 정치체제의 변혁을 공개적으로 요구하는 국민들이다. 중국의 변화를 관찰해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같은 현실을 깊이 인식하고 있다. 20세기 중국은 많은 변화를 경험했다. 수차례 기근을 맞으면서 수백만명이 숨지는 사고도 겪었다. 정치 파벌간 충돌로 중국인들이 고통받은 사례는 너무도 많았다. 이중 가장 큰 변화는 1976년 마오쩌둥의 독재 체제가 끝난 후 중국 공산당이 국민 개개인의 삶에 대한 간섭을 줄였다는 점이다. 중국 정부는 자본주의적 경제 시스템을 도입했으며,이 과정에서 통제를 풀어나가면서 국민의 삶의 질을 개선시켰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더 이상 삶에 대한 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게 되면서 중국인들은 자유롭게 여행하고 사고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정부에도 많은 것을 요구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다. 중국인들은 이와 함께 경제 번영과 높은 교육 수준을 바탕으로 노동조합 종교단체 등 정부의 영향권 밖에서 독립적인 권력조직을 만들었다. 이들 조직은 이제 중국 사회가 어떤 식으로 운영돼야 하며,정부가 어떻게 움직여야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주장을 펴고 있다. 이런 시대 상황에서 중국에서의 사스 문제는 많은 의미를 던져주고 있다. 첫째,중국인들은 이제 좀 더 자유롭게 정보가 움직일 수 있는 정치 시스템을 갈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스 문제의 초기 진압이 불가능했던 이유도 중국의 정치 시스템이 이른바 소수 지도자가 이끄는 체제였기 때문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하고 있다. 둘째,사스 사태를 계기로 중국 국민들은 더 이상 지도자들을 믿지 않게 됐다. 사스 문제를 해결하면서 중국 정부는 인명 피해를 줄이는 일보다 비밀 유지에 급급한 모습으로 일관,사태를 악화시켰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이에 맞서 중국 정부는 상황 전환을 시도하려는 태세다. 문제는 사스 사태를 책임질 희생양을 찾을 수 없다는 데 있다. 상황이 나빠질수록 비난의 화살은 낡은 정치체제로 집중되고 있어 중국 정부는 더욱 당황하고 있다. 중국과 같은 전체주의 체제는 미세조정(fine-tuning)을 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오직 강제적인 조치들에만 의존할 뿐이다. 중국이 만약 세련된 정치체제를 구축해놓은 상태였다면 건전한 행동 주체로 이미 성장한 시민사회가 사스 문제 해결을 도왔을 것으로 생각된다. 예를 들어 기업 언론 종교단체 등이 적극적으로 참여,사스 문제에 공동 대처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과거 체르노빌 핵 누출 사고 후 소련체제가 붕괴했던 것처럼 중국의 정치체제도 몰락의 길을 걸을 것인가? 결론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소련과 달리 중국은 견고한 경제성장을 누리고 있으며,대내외로부터 어떠한 군사적 위협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은 너무도 많은 짐을 짊어지고 가는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다. 선택은 의외로 간단하다. 빨리 짐을 줄이고 모든 일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효과적인 정치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다. 이것이 사스 문제를 해결하는 지름길이다. 정리=유영석 기자 yooys@hankyung.com -------------------------------------------------------------- ◇이 글은 이안 존슨 월스트리트저널 독일 지부장이 월스트리트 최신호(5월6일자)에 기고한 'Sickness in the System'이란 글을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