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단회의에서 화의결정이 확정된 날 윤 사장은 골프에서 손을 떼기로 결심한다. 서울 명동에 골프연습장을 지을 정도로 골프광이었던 그였다. 골프뿐 아니다. 곧 담배도 끊었다. 회사 업무에 온 몸을 바친다는 각오로. 화의조건에 의해 5백80여억원의 채무는 2005년까지 3년거치 5년분할 상환해야 한다. 3년간은 이자만 갚으면 되지만 그 이후는 이렇다할 자신이 없었다. 법원에는 6개월마다 화의계획 이행상황을 보고해야 하고. 윤 사장은 당시를 숨이 막힐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 했다. 산을 찾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에서다. 혼자서 북한산을 오르며 탈출구에 대해 고민했다. 무엇보다 비수익 자산을 팔아야 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금세 팔릴 것 같던 목좋은 건물도 임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유동성이 부족한 것은 다른 회사도 비슷했다. 어찌어찌 작자가 나서면,이번엔 가격을 터무니 없이 낮게 불렀다. 서울 명동 건물을 팔 때였다. 멀티패션 사업에 뛰어들기 위해 따로 회사를 세우면서 사뒀던 건물이었는데 사겠다고 나선 업체가 구입가의 절반도 안되는 값을 불렀다. 화의기업이란 약점을 이용해 '아니면 말고'라는 식이었다. "결국 48억원짜리를 26억원에 팔았어요.업보라 생각했죠." 그런 울며겨자먹기 식으로 서울 성수동에 있던 아파트형 분공장은 16억원에 처분하고 전주 건물은 45억원에 팔았다. 20년도 더 된 돈암동 매장은 보증금 14억원을 돌려 받았다. 한 푼이라도 더 갚기 위해 가맹점 점주들에게 이해를 구하고 깔린 미수금도 긁어모았다. 얼추 1백억원이 모였다. 그러나 빚 갚기엔 턱없이 모자란 액수였다. 직원들과 허리띠를 졸라매고,비용을 줄이고 영업을 강화하는 수 밖에…. "재산을 더 모아 두지 못한 것을 그 때 만큼 후회한 적이 없어요." 윤 사장은 사실 크라운베이커리를 맡기 전에 한국자동기라는 공장자동시설 생산업체를 운영한 적이 있다. 94년의 일이다. 그러나 당시 그의 관심은 풍력발전에 많이 가 있었다. 연세대 물리학 석사출신인 그는 국내 최초로 풍력발전에 관한 책을 번역할 정도로 풍력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 "돈이 모이면 풍력연구에 고스란히 쏟아부었지요." 한 때 정열을 바쳤던 풍력 연구 시설은 그러나 현금이 절박한 그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비용 절감에 나서자 주변에서는 잉여인력 감축을 권해 왔다. 하지만 그는 선뜻 내키지 않았다. '죄없는 직원들을 어떻게 해고할 수 있나.'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없다'는 원칙이었다. 생산성을 높이고 마케팅과 영업을 독려하면 인력감축이 필요없을 거라는 계산에서였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현실의 벽'이 그에게 다가왔다. 사무직원 일부가 생산직 노동조합에 편입했던 것이다. 그들은 감원을 우려한 나머지 퇴직금 보장과 신분 보장 등을 강력히 요구해 왔다. 베이커리 업계 특성상 파업은 영업에 치명적이다. 재고가 쌓이면 바로 제품이 상하기 때문이다. 노조에 가입한 직원들은 점점 늘어나 60여명에 달했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