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적 금융인프라 구축'을 국정과제로 내건 새정부에서도 여전히 후진적인 `은행장 흔들기' 행태가 되풀이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선진금융 추세에 발맞춰 자율.책임경영이 더없이 강조되는 시점에서 은행장 인사가 또다시 정부의 입김에 의해 좌지우지될 조짐을 보이면서 `관치금융'의 부활을염려하는 금융계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국민은행장 낙마설 요즘 은행권은 근거가 불확실한 `낙마설(說)'로 들끓고 있다. `실적부진' `방만경영' `리더십 부재' 등의 그럴싸한 꼬리표를 달고 있지만 실제론 "정권이 바뀌었으니 한번 물갈이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새정부 주변의 막연한정치논리와 관료집단의 입김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대표적인 예가 `JT(김정태 국민은행장의 영문이니셜) 낙마설'이다. 명백한 경영상 하자가 드러나지 않았는데도 지난 2월 새정부 출범이후 줄곧 "새정부에 잘못 보여 도중하차한다더라" "9월이면 물러난다더라"는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급기야 1.4분기 IR설명회에 불참한 이후 낙마설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1.4분기 실적저조가 낙마설의 일부 근거로 나돌고 있지만 분기실적만으로 경영진 교체를 검토하는 것은 이르다는게 중론이다. 그보다는 정치권 일각이나 정부 관계자들 사이에서 "어렵게 합병을 시켜놨는데,국민은행 경영진만 덕보고 있는 것 아니냐" "완전민영화하면 현 경영진만 좋은 것아니냐"는 등의 시각이 부쩍 늘고있는 것이 진원지라는 분석이 높다. 감사원의 국민은행 특감도 낙마설과 연관짓는 해석이 대체적이다. 감사의 칼날이 단순 경비실태 점검이 아니라 스톡옵션 부여와 이익실현, 컨설팅계약건 등 주로 김 행장 개인을 겨누고 있는 징후가 있는 것으로 국민은행 주변에서는 보고 있다. 그러나 낙마설이 끊이질 않자 외국인투자자들을 포함한 시장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관치인사' 폐해를 우려하는 표정이 역력해지고 있다. 한 미국계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주총이 끝난지 한달 밖에 안됐는데 느닷없이 `행장이 바뀐다더라'는 소문이 나도니까 국민은행이 과연 뉴욕증시에 상장된 은행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라며 "정부가 합리적 명분없이 지배구조에 개입한다는 인상을줄 경우 한국시장 전체에 대한 신뢰의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카드부실 처리와 국민카드 통합문제, 구 주택.국민은행 직원들간 `화학적 결합'등의 난제가 산적해있는 국민은행 내부에서는 뚜렷한 대안없이 행장 낙마설이 나돌자 일부 동요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 우리.하나.외환은행장도 흔들려 우리은행도 끊임없이 회자되는 이덕훈 행장 교체설로 뒤숭숭하다. 김정태 행장과 마찬가지로 딱히 교체요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재경부나 한은,금감위.금감원 등의 인사구도와 맞물려 "자리를 비워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관료집단의 논리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금융사고가 잇따라 적발되기는 했지만 발생시점이 이 행장 취임이전이어서 직접적인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지는 의문이라는 시각이 많다. 이미 은행주변에서는 재경부, 금감위, 한은 고위간부와 국책은행장, 우리금융지주 고위인사들을 후보군으로 삼아 5∼6개의 시나리오가 등장하고 있다. 우리은행 고위관계자는 "지난 1.4분기 시중은행 가운데 가장 많은 순익을 올리는 등 은행이 본궤도에 오르는가 싶었는데 교체설이 나돌아 당혹스럽다"며 "지금부터라도 소신있게 경영을 할 수 있는 풍토를 마련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하나은행 김승유 행장도 흔들리는 은행장중 한명이다. 서울은행 인수과정에서의 업무처리, SK글로벌 대출부실 등이 거론되고 있지만과연 이사회를 설득할 수 있을만한 교체요인인지는 논란거리다. 외환은행은 이강원 행장의 교체론이 거론되는 가운데 재경부 간부나 국책은행장이 자리를 옮긴다는 소문이 늘어나고 있다. 이 행장의 경우 실적부진과 현대 계열사 처리미숙, 리더십 부재 등이 교체사유로 떠오르고 있지만 취임한 지 1년도 채 안돼 소신.책임경영을 펴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았던게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 관치금융으로 회귀하나 현 은행장들의 자질이나 능력, 정치적 성향을 떠나 정부가 과거방식대로 `자리만들기' 차원에서 은행장 교체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는 것은 또다시 시장원리를 무시한 관치금융으로 회귀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정부도 대주주로서 권한을 행사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공적관리자로서의 역할을넘어 인위적으로 행장인사를 좌지우지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정부가 공언한 민영화 방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것이다. 또 지배구조에 관한한 이사회나 행장추천위원회 등을 통해 선임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갖춰놓고는 때만되면 정치권이나 관료집단의 이해관계에 따라 절차와원칙을 무시하고 행장이 낙마하는 후진적 행태는 근절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국내 은행들의 지배구조 문제가 외국인 투자가들의 주된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는 점에서 정부가 은행장 선임문제에 관한한 금융시장이나 대외신인도에 미치는 영향까지 충분히 고려해야한다고 금융계는 주문하고 있다. 일례로 뉴욕증시에 상장된 국내 대표적 은행인 국민은행의 경우 불과 한달전 주총에서 외국인 사외이사들을 포함해 이사회가 대폭 개편된 점을 감안하면 현 시점에서 행장교체설이 거론된다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모 시중은행 고위관계자는 "선진금융의 핵심이 자율.책임경영을 보장하는 지배구조의 확립에 있다면 정부가 먼저 자신이 대주주로 있는 은행에서 절차의 투명성과민주성을 지키며 지배구조의 모범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노효동기자 rhd@yonhap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