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대문시장은 대표적인 재래시장이다. 규모나 취급품목수에서 단연 으뜸이다. 1만개가 넘는 점포에 대표 품목은 의류 액세서리 안경 등이다. 특히 아동복은 액세서리와 함께 남대문시장을 지탱하는 두 기둥으로 꼽힌다. 한때 우리나라 아동복 유통 물량의 70% 이상이 이곳을 거쳤다. 지금도 부르뎅 마마 크레용 포키 등 7개 아동복상가에 1천5백여개 점포가 있고 수도권 도매의 절반 이상이 이곳에서 이뤄진다. 그러나 남대문 아동복의 명성도 예전 같지 않다. 전국 곳곳에 할인점이 들어서고 생활수준 향상으로 브랜드 옷을 찾는 소비자가 늘면서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한때 남대문 아동복시장에서 선두를 다퉜던 원아동복의 경우 4년전 숙녀복 상가로 바뀌었다. 어린이날을 일주일 앞둔 지금도 인파를 찾아보기 어렵고 흥정소리도 뜸하다. ◆사라진 어린이날 대목 토요일인 지난 26일 오후 2시 남대문 아동복상가. 점포마다 세일을 알리는 갖가지 광고물이 붙어 있다. 티셔츠는 5천원 안팎이면 살 수 있다. 1천원짜리도 눈에 띈다. 바지나 재킷도 1만원을 밑도는 제품이 적지 않다. 40대로 보이는 여자 손님들이 물건을 들춰보다가 이내 발길을 돌린다. 어린이 운동복을 판매하는 한 상인은 "자금을 돌리기 위해 재고상품을 깔아놓았다"며 "팔아봐야 남는 것도 없다"고 말한다. 한때 '아동복의 메카'로 통했던 남대문 아동복시장은 지금 극심한 불황에 시달리고 있다. 어린이날이 다가오면서 매출이 조금씩 늘고는 있지만 예전의 평소 수준에 불과하다. 상인들은 어느 누구도 '어린이날 대목'이란 말을 쓰지 않는다. 아동복 상인회 관계자들은 올해 아동복 매출이 지난해보다 30∼35% 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장사가 뜻대로 되지 않자 남대문을 떠나는 상인들이 줄을 잇고 있다. 포키아동복의 이용운 상인회장은 "최근 45일간 15개 점포의 주인이 바뀌었다"고 밝혔다. 부르뎅아동복 상가에서 아동용 청바지를 판매하는 한 상인도 "요즘은 친해질 만하면 주인이 바뀐다"며 "옆집은 1년 새 주인이 세 번이나 바뀌었다"고 말했다. ◆아동복 소매시장의 몰락 28일 밤 1시. 남대문시장 옆 퇴계로에는 관광버스 10여대가 줄을 지어 있다. 아동복을 사러 지방 상인들이 타고 온 버스들이다. 노점상에게 "버스가 많다"고 했더니 "저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다"라며 "작년 이맘때에 비하면 30% 정도 줄어든 것 같다"고 말한다. 도매 전문상가인 크레용아동복에서는 흥정이 한창이다. 하지만 상인들의 표정은 밝지 않다. 막 거래를 끝낸 한 상인은 "지방 상인들이 가져가는 물량이 작년의 절반에 불과하다"며 담배를 꺼내 문다. 지방에서 올라온 소매 상인들도 너나 없이 한숨만 내쉰다. 수원에서 왔다는 30대 여자는 "요즘은 애들 옷도 입히지 않고 키우는 모양"이라며 "경기가 어려워서 그런지 이거다 싶은 신제품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고 말했다. 남대문 아동복시장이 위축된 것은 할인점 백화점 등이 늘어남에 따라 남대문에서 옷을 사다가 판매하는 아동복 소매점이 대폭 줄었기 때문이다. 중산층 주부들이 이름있는 옷,백화점 옷을 선호하면서 동네 아동복 가게들은 설 땅을 잃어가고 있다. 남대문에서 10년 동안 아동복 장사를 했다는 한 상인은 "할인점 백화점 등이 늘어나면서 남대문 아동복을 파는 소규모 소매점들이 많이 문을 닫았다"고 얘기했다. 이 상인은 "경기가 침체되자 '시장 물건'을 고집했던 중하층 가정마저 형제 자매끼리 옷을 물려 입히는지 도무지 옷을 사가지 않는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