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21일 발표한 2002년 증권사 영업실적을 보면 예년과 다른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44개 국내 증권사 전체로 세전이익은 전년대비 6천1백46억원이나 줄었다. 증시침체가 지속됐던 터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는 결과였다. 하지만 유일하게 증권사들이 전년보다 실적이 좋아진 분야가 있다. 자기 재산으로 운용하는 선물·옵션부문이다. 증권사들은 선물·옵션거래를 통해 총3천6백억원의 이익을 챙겼다. 전년보다 2천5백억원을 더 남긴 셈이다. '선물·옵션팀이 증권사를 먹여살렸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과장은 아니다. 개별 증권사의 사정은 더 극적(?)이다. 메리츠증권은 지난10월 서울증권에서 5명을 스카우트해 선물·옵션 거래에 나섰다. 출범6개월도 안 된 선물옵션 팀은 90억원을 벌어들였다. 이 회사의 지난 한해 순이익이 3억5천만원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선물옵션팀의 실적기여도를 짐작케 한다. 우리증권 선물·옵션팀도 1년동안 1백80억원을 벌었다. 이 회사 전체순이익은 16억원에 불과했다. 서울 하나 세종 등 다른 중소형사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모 증권사 선물·옵션 담당직원은 수십억원을 성과급으로 가져갔다느니,파생상품팀과 회사간에 수익분배 문제로 갈등이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그러나 파생상품팀의 눈부신 성과에 대해 "더 이상 증권사들이 간판을 달고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는 자기비하적 지적이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주식투자와 달리 선물·옵션은 버는 측이 있으면 잃는 측이 나오는 철저한 제로섬(zero-sum)게임이다. 복잡한 투자이론을 모르는 초보 투자자들,복권을 사는 마음으로 외가격 옵션에 베팅하는 개인들의 쌈짓돈은 증권사 계정으로 흘러들어간 셈이다. 한 대형증권사 사장이 '정도영업'에 정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면서 무분별한 약정경쟁을 벌이는 영업직원을 비난하는 듯한 발언으로 구설수에 오른 적이 있다. 이런 비난은 사실 증권사 자체에 되돌아가야 할 것 같다. 지금 이 시간에도 증권사들은 선물·옵션 수익률 게임과 투자설명회를 열며 투자자들을 유인하고 있다. 박민하 증권부 기자 haha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