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전 8시 서울 상암동 월드컵공원 남문광장. 한국경제신문사와 노동부 신노사문화우수기업중앙협의회가 공동 주최하는 '노사평화와 사회통합을 위한 국민 마라톤' 대회장에는 사흘째 봄비가 내렸다.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출발 한 시간 전부터 광장은 8천여명의 인파로 가득 메워졌다. 3백70여명의 임직원이 참가한 경인양행의 박성희씨는 "노사관계는 장거리를 함께 호흡하면서 서로 부축하고 용기를 북돋워주는 마라톤과 같다는 느낌이 든다"며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이 대회에 참가했다"고 말했다. 제법 싸늘한 기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일부 참가자들은 이미 반팔 운동복으로 갈아입은 뒤 맨손체조와 마사지로 몸을 풀면서 출발 신호를 기다렸다. 직장 단위 참가자들은 동료 및 가족과 함께 회사 이름과 노사 화합을 다지는 내용의 현수막을 내걸고 뜨거운 응원전을 펼치기도 했다. 오전 9시.출발 신호와 함께 아마추어 마라토너들이 힘찬 '파이팅'을 외치며 달려나가자 열달 전 한반도 지축을 울렸던 월드컵 4강 신화의 함성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노동자도 경영자도 따로 없었다. 남녀노소나 내·외국인 구분도 없었다. 아직 산업현장에는 갈등이 많지만 마라톤대회에 참가한 기업인들이나 노조원들의 얼굴에서는 반목의 그림자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빙그레에 근무하는 강재묵씨는 "처음 참가하지만 다같이 서로를 격려하며 뛰는 모습에 기분이 무척 좋았다"며 "지금도 갈등을 빚고 있는 사업장의 노사 양측에 이 대회 참가를 정말 권하고 싶다"고 말했다. 휠체어를 타고 5㎞ 코스에 도전한 김선규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고용개발원장은 "노사화합이나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벽을 허무는 것이나 '타인에 대한 배려'의 정신에서 출발한다"며 내년에도 꼭 나오겠다고 다짐했다. 이날 대회는 파업 초읽기까지 갔던 철도분규가 새벽에 극적으로 타결된 직후여서 노사문화의 새 장을 기원하는 의미도 갖게 됐다. 노사화합의 정신을 달리기로 체험한 마라토너들은 봄비 속에서 열기를 식히며 내년 대회 재회를 기약했다. 정한영 사회부 기자 c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