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잠잠했던 집값이 다시 들썩이고 있다. 며칠 새 수천만원이 오른 아파트도 있다고 한다.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서민들의 억장은 무너지는데 정부는 시원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일부 투기세력이 거품을 만들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적어도 주택정책을 주관하는 건설교통부만큼은 이미 5~6년 전부터 집값 불안 조짐을 감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이를 반증한다. 1996년 하반기 건교부는 1주일이 멀다 하고 수도권 택지공급 계획을 발표했다. 당시 건교부 실무자들 사이에는 수도권 5대 신도시 건설 이후 택지공급을 등한시한 데 대한 자책감이 퍼져 있었다. 실무를 총괄했던 A국장은 "지난 6~7년 간 수도권에서 택지공급이 거의 없었다"며 "4~5년 뒤에는 집값이 급등할지 모른다"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A국장은 또 외환위기가 시작된 97년 12월 아파트 분양가 자율화를 위한 공청회를 지켜보며 "경제가 다시 살아나면 주택업자들은 잇속 챙기기에 본격 나설 것"이라며 고삐 풀린 분양가가 집값을 부추길 것이라고 걱정했다. 그의 예상은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그로부터 5년 뒤인 2001년 하반기부터 집값이 가파르게 상승했다. 그리고 그가 지적했던 대로 부족한 택지와 지나치게 높은 분양가가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다. 그는 그때 이미 지금의 집값 상승과 그 원인을 꿰뚫고 있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그는 왜 이를 막지 못했을까. "택지는 부족한데 정부의 총의는 모아지지 않는다"는 게 당시 그가 탄식조로 한 말이다. 80년대 후반 신도시를 건설할 때처럼 범정부적으로 나서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얘기다. 그는 또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마련하지 못한 채 분양가 자율화를 단행한데 대해서도 아쉬워했다. 분명 지금의 수도권 집값 문제는 A국장의 말대로 공급부족과 그에 따른 분양가 상승이 맞물려 빚어내고 있다. 한마디로 수급불균형이 원인이다. 정부가 제2강남을 건설하겠다고 나섰던 것도 이같은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했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택지 공급을 통해 시장을 원천적으로 안정시키겠다는 게 건교부의 그림이었다. 하지만 이도 신행정수도 건설계획과 맞물려 대폭 수정될 처지에 놓였다. 어쨌거나 신행정수도 건설과 이를 감안한 수도권 신도시 개발이 주택공급의 숨통을 트는 계기가 돼야 한다는 데는 이론이 있을 수 없다. 택지에 못지 않게 분양가 또한 되짚어 봐야 할 대상으로 지목되고 있다. 80년대 후반 평당 90만원이 채 안됐던 서울지역 아파트 분양가가 최근 들어 최고 1천8백만원까지 뛰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분양가를 다시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법 커지고 있다. 이제 정부는 처방을 내놓아야 한다. 정부가 내려야 할 처방은 분명하다. 공급확대를 통한 수급균형이다. 이제 더이상 수요억제를 통한 집값 잡기에 매달려서는 안된다. 세무조사든 자금추적이든 모두 시장의 심리를 압박해 수요를 억제해 보자는 단기처방에 불과하다. 대책이 나올 때마다 시장은 잠시 얼어붙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요동치기 시작한다. 또 단순히 투기꾼들에 의해 주택시장이 왜곡되고 있다고 치부해서도 안된다. 그리고 지금은 단순히 왜곡으로만 몰아칠 것만도 아니다. 그보다는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택지수급 계획 수립이 절실한 시점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후 첫 국회연설에서 집값만큼은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밝혔다. 서민들은 정부가 실효성 있는 대책을 조속히 내놓기를 기다리고 있다. che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