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증권거래소나 코스닥에 상장·등록된 기업들이 감사담당 회계법인을 6년마다 교체토록 하는 한편 주요주주 및 임원에 대한 금전대여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회계제도 개선안을 마련했다고 한다. 기업과 회계법인의 유착으로 인한 분식회계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투명 회계를 위한 정부의 의지는 높이 살 만하다. 하지만 회계제도 개선은 의지만 갖고 되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 여건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점에서 급진적 변화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번에 발표한 내용중 주요주주 및 임원들에 대해 원칙적으로 금전대여를 금지토록 한 것은 기업활동을 저해할 소지가 크다고 본다. 기업들은 금전대여라는 방법을 통해 부동산을 매수하거나 경영권 방어를 위한 지분을 확보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기 때문이다. 주요주주가 일부러 회사에 손해를 끼치기 위해 이런 방법을 쓰지는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다소 비현실적 내용이라는 생각이다. 회계법인을 6년마다 교체토록 하는 것도 논란의 소지가 있다. 최근의 SK글로벌 사태가 보여주듯 기업과 회계법인이 장기간에 걸쳐 거래관계를 맺을 경우 분식회계의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진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긴 하다. 회계선진국으로 불리는 미국에서조차 엔론 월드컴 등 많은 기업들의 회계조작 사실이 드러났고 세계적 회계법인이었던 아더 앤더슨이 결국 파산했다는 사실은 기업과 회계법인간의 유착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보여주고도 남는다. 하지만 회계법인을 너무 자주 바꾸는 것도 여러가지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우선 일의 연속성에서 문제가 생길 뿐 아니라 바뀐 회계법인이 해당 기업의 특성과 경영상황을 정확히 파악하는 과정에서 초래될 비용과 비능률도 무시하기 어렵다. 최고경영자(CEO)와 최고재무책임자(CFO)에게 회계공시서류에 대한 인증(사인)을 의무화시키는 방안도 경제활동을 위축시킬 우려가 적지 않다. 이 제도가 도입될 경우 CEO와 CFO가 사후 책임문제 때문에 과감한 경영활동을 펼치기 힘들어진다는 재계의 주장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더구나 이는 미국에서조차 너무 심한 규제라는 논란이 일고 있는 사안이다. 투명 회계가 중요하다는 사실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제도도 현실을 무시해서는 성공하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회계제도 개선은 보다 완만하게 충격을 줄일 수 있는 방법으로 진행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