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째 황사가 하늘을 뿌옇게 뒤덮다 걷히나 싶어 밖에 나가보니 아직 냉랭한 봄바람이 거리를 휩쓸고 있었다. 헝클어진 머리칼과 황사가 번진 얼굴들을 보면서 '꽃샘 추위는 역시 제몫을 다하려는구나'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봄비 질척질척 내리던 지난 주말 수원에 있는 '방화수류정(訪花水流亭)'에 가보았다. 심신이 지칠 때 일년에 한두번 찾아가 수원성을 거닐며 이것저것 생각해 보는 것이 오랜 취미 중의 하나다. 초등학교 시절, 청소당번으로 수원 남문을 빗자루질하던 기억이 남아서일까, 아니면 과거로의 도피를 시도하는 퇴행심리일까. 어떻든 그날은 자주 가지 않던 방화수류정으로 발길을 돌렸다. 봄이 왔으니 싹이 트고 물도 흐르지 않겠나 하는 낭만적 기대가 있었지만, 찔끔거리는 봄비가 길바닥을 적셔주는 것 외에 별다른 정취가 우러나는 것은 아니었다. 왜 이곳에 왔을까. 조그만 연못이 가운데 있고, 동남쪽으로 조금 언덕진 바위 위 오도카니 놓여 있는 정자를 바라보면서 그런 의문을 떠올려보았다. 문자 그대로 선조들은 여기서 꽃을 찾아보고 흘러가는 물을 바라보면서 무엇을 생각했을까. 그런데, 갑자기 이 작은 연못과 정자가 매우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연못가를 한바퀴 둘러보고, 정자 위에 올라가 사방을 조망해 보았다. 인근의 나즈막한 구릉과 인가가 정겹게 보이고, 길게 흘러가는 개천의 물줄기도 한 눈에 들어왔다. 이 작은 물줄기에서 은빛 피라미를 잡던 추억도 스쳐갔다. 사람들의 삶과 친숙한 이곳에 작고 오밀조밀한 정자를 세운 선인들의 지혜가 바로 여기에 있는 건 아닐까. 남을 위압하는 것도 아니요,남을 지배하고 정복하자는 것도 아닌 자리에 조그만 정자를 세워, 사람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을 갖는다는 것은 한국 특유의 흥취이자 여유일 것이다. 흔히 한국의 미를 '여백의 미'라고 한다. 여백이란 삶의 공간을 다 채우려는 의욕이 아니요, 삶을 지배하겠다는 의지도 아니다. 이 여백에서 심미적 의식이 비롯되고, 이 여백에서 한국인 스스로의 미적 존재 가치가 드러나는 건 아닐까. 지난 2월 중순, 당나라 시인 왕발(王勃)의 시로 유명한 중국 강서성(江西省) 남창(南昌)에 있는 등왕각에 올라가 본 적이 있다. 황학루 악양루와 함께 중국의 3대 누각이라고 일컬어지는 이 곳에서 천하를 호령하던 중국인의 기개와 위엄을 느낀 바 있다. 왕발의 '등왕각' 시 또한 웅걸찬 기상과 시적 수사의 화려함으로 일세를 풍미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단층 짜리 누각에 익숙한 필자에게 우람한 9층의 거대한 등왕각은 놀라움과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왜 이 작고 아담한 방화수류정을 바라보면서 남다른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 것일까. 어찌 보면 왜소하고, 초라하다고도 할 수 있는 이 정자에서 새삼스럽게 아름다움을 느낀 것은, 중국의 등왕각과 그것이 다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새삼스럽게 자위의 변죽을 울릴 필요도 없다. 오히려 '한국미의 독자성은 그 크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점을 인식한 것은 지난번 중국 여행의 소득인지도 모른다. 창밖으로 가끔씩 흩뿌리는 봄비 속에서 방화수류정을 바라보면서 걸쭉한 막걸리를 한잔 마셨다. 오랜만에 마셔보는 막걸리의 싸한 맛에서 잊어버리고 있던 미각이 새롭게 되살아나고, 그동안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던 이 정자의 아담한 아름다움이 배어 나왔다. 작고 찌그러져,볼품 없는 막걸리 집에서 되찾은 이 마음의 여유는 쉽게 가질 수 없는 것이 분명하다. 아마도 그것은 오랜만에 내가 내 자신으로 돌아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고유성과 독자성은 삶의 근원이자 문화와 예술의 근간이다. 왕발의 웅걸찬 시와 다르겠지만 나는 방화수류정에 느낀 바 다음 시 일절을 술기운이 감도는 입속으로 중얼거려보지 않을 수 없다. '오랜만에 발길 더듬어 방화수류정에 / 꽃 피고 물흐르는 봄을 찾아왔는데 / 부연 하늘아래 봄비만 질척거리고 / 탁주 한사발에 취흥이 소슬하여 / 문밖의 작은 바위에 오똑한 정자가 옛 벗 같으니 / 남창의 고대광실 등왕각이 부럽지 않네' < cdhchoi@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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