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두 동국제강 사장=베트남전 와중에 불귀의 객이 될 뻔했다. 전 사장이 베트남을 찾은 것은 지난 75년 1월초. 무역부 차장으로 주요 원자재인 고철 수입차 베트남 출장을 갔던 때였다. 부장과 캄란베이에서 고철 3천t을 실어보낸 뒤 고철을 더 구하려는 욕심에 민항기 대신 미군 수송기를 개조한 4발 프로펠러기를 타고 중부 퀴농으로 가는 도중에 일이 벌어졌다. 프로펠러 하나가 갑작스럽게 멈춰 선 것. "SOS를 외치는 조종사의 다급한 목소리가 벌써 저세상 소리인 것처럼 들리더군요. 가족들의 얼굴은 비행기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뇌리를 스쳐 지나갔고요." 다행히 조종사의 SOS 무전이 먹혀들고 나머지 3기의 프로펠러가 제기능을 잃지 않은 덕분에 가까스로 주변 탈라트시에 불시착할 수 있었지만 '베트남 귀신'이 될 뻔했던 아찔한 순간이었다. 계획대로 퀴농에서 3천t의 고철을 더 구해 회사로 실어보내고 나니 이제 베트남을 빠져나오는 일이 아찔해졌다. 곳곳에 뇌물을 먹이고서야 겨우 퀴농에서 사이공으로 빠져나와 귀국길에 오를 수 있었다. 그 때가 75년 1월 30일. 신문 1면이 연일 '월남 패망 임박','너도나도 베트남 탈출'이라는 헤드라인으로 장식돼 있었을 때였다. ◆김영철 두산중공업 상무(두바이 지사장)=김 상무는 지난 2000년의 악몽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해 5월 두산중공업이 에리트리아에서 발전소 건설공사를 하던 중 에리트리아와 이웃나라 에티오피아간에 전쟁이 터졌다. 당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주재하면서 공사를 총괄했던 김 상무는 TV에서 전쟁 뉴스가 흘러나오자 그 길로 총알이 빗발치는 에리트리아로 달려갔다. 그러나 막상 현장에 도착해보니 전쟁이 소강상태에 접어들 기색이었다. 아프리카 단결기구와 유엔이 휴전을 종용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철수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고심했다. 에리트리아 정부에서도 공사가 거의 마무리 단계라며 철수만은 미뤄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결국 김 상무는 귀국하고 싶어하는 직원들을 달래 철수를 미뤘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에리트리아 해군 사령관을 만나 언제라도 비상시에는 직원들이 해상 탈출을 할 수 있도록 건설 현장 앞바다에 함정을 대기시켜줄 것을 요청한 뒤 김 상무는 사우디아라비아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김 상무가 떠난 바로 다음날 아침 에티오피아 전투기들이 발전소 현장을 공습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눈 앞이 깜깜했어요.내 오판이 직원들을 죽음으로 내몬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피가 거꾸로 솟구쳤습니다." 죄책감에 부들부들 떨면서 김 상무는 현장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느님이 도우셨다. 마침 일요일이라 직원들이 아침식사를 평소보다 조금 늦게 하는 바람에 간발의 차이로 화를 면하게 됐다는 것. 그때서야 김 상무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지금도 그때 생각만 하면 아찔하다는 김 상무는 "당시 만에 하나 직원들에게 문제가 생겼다면 평생 충격과 죄책감으로 괴로워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