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내린 봄비로 봄기운은 도는데 세상은 어수선하고 불안하다. 북핵 위기가 닥친 후부터 달러 사재기를 하는 이웃들도 보인다. 달러를 바꿀 돈도 없는 민초들은 글자 그대로 흙에 뿌리박은 풀같이 전쟁이 나더라도 납작 엎드려 있을 수밖에 없다. 외국사람들은 태연한 우리를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한다고 하지만. '후세인은 48시간 내에 이라크를 떠나라'는 미국의 최후통첩이 나와 이라크전쟁은 개전이 임박한 것 같은데 북핵 문제는 오리무중이다. 주식과 채권 가격이 폭락하고 환율이 급등했다. 무역수지는 악화되고 해외여행수지 적자는 확대돼 가는데 해외자금은 끊겨만 간다. 투자와 소비가 위축되기 시작한지는 벌써 오래다. SK그룹 분식회계가 터지자 금융시장은 요동을 쳤다. 대기업의 투명성에 대한 신뢰도는 또다시 흔들거린다. 제조업의 대외경쟁력과 수출단가는 1998년 이후 지속적으로 떨어져 앞으로 닥쳐올 위기는 '경쟁력 위기'라고 진단하고,반도체 등 핵심제품의 수출경쟁력도 장기적으로 하향국면에 있다는 것이,일시적인 유동성 위기인 '외환위기'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어떤 연구소의 지적은 경제위기론의 본질을 말해 주는 것 같다. SK사태에 대한 외국투자가들의 견해는 대체로 단기적으로 금융시장에 충격이 있었지만 '바른 조치(right thing to do)'로,장기적으로 '아주 긍정적(strong positive)'으로 보고 있다. 피 흘리지 않고 수술할 수 있다면 오죽 좋겠냐마는 SK사태의 파동은 우리가 지급해야 할 당연한 비용이다. SK의 어떤 간부가 "이번 수사로 한국경제의 회계투명성이 10년은 개선됐다"고 했다니 수익이 더 많은 것 같기도 하다. 지금 우리경제의 위기론이 이라크전쟁이나 북핵 문제 등의 외생변수에 의해 발생했고 SK사태에 의해 증폭된 것이라면 차라리 걱정이 덜할 것 같다. 이라크전쟁은 언젠가 끝날 것이고,북핵 문제를 두고 발생한 불확실성은 외교적 노력으로 풀 수 있을 것 같아 보인다. 우리 경제가 당연히 부담해야 할 비용과 경제외적인 변수들을 제외하면 대외경쟁력의 약화,경상수지적자,불확실성의 누적에 따른 투자위축,가계부채 증가에 따른 소비감소가 현재 경제문제의 본질적인 부분이다. 최근 논의되고 있는 적자재정은 사태의 본질과 다른 이야기 같다. 대외경쟁력은 기업과 정부의 장기적인 대책과 노력이 필요하고 경상수지적자는 이러한 노력의 총체적 결과인데 적자재정은 오히려 악화요인이 된다. 투자환경의 확실성제고는 경륜 있고 일관성 있는 국정운영과 정제된 발언으로 해결할 일이고,가계부채 문제는 살아가면서 갚을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지 적자재정과는 관계없는 일이다. 야생의 맹수들이 병에 걸리면 굴속에 들어가 아무것도 먹지 않고 참으며 저항력을 증가시킴으로써 치료하는 장면을 보았다. 우리가 지금 어렵다고 적자재정을 쓰면 일시적인 통증은 완화될 수 있겠지만 병을 더 깊게 할 수도 있다. 일시적인 자금경색을 막기 위한 자금투입과 같이 최소한의 대증요법은 불가피하더라도 '아닌 대책(不策)'은 '없는 대책(無策)'보다 못하다. 어항속의 금붕어가 정지해 있는 모습을 가까이 보면 끊임없이 지느러미 질을 하는 것을 본다. '무책'을 유지하기 위해 '불책'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설득해야 하고 때론 불평도 들어야 한다. 지금 경제외적인 변수와 경제내적인 변수,구조적인 요인과 마찰적인 요인이 혼합된 상황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뚜렷한 대책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난 정부의 인위적인 경기부양정책이 주택가격을 폭등시켜 집 없는 서민에게 엄청난 고통을 주고 경상수지를 적자로 돌아서게 한 주요 요인이 됐다. 1997년 외환위기 때 논란은 있었지만 재정긴축과 고금리정책을 통해 환율을 안정시키고 경제를 정상에 복귀시킨 경험을 기억해야 한다. 지금 적자재정을 논의하는 것은 사태의 본질과 멀어 보이고 경쟁력 위기를 확대시킬지도 모른다. 가계와 기업과 정부 모두 고통을 참고 견디며 원칙과 정도로 차분하게 저항력을 키우고 경쟁력을 높이는 원론적인 정책이 상책(上策)이 아닐까 생각된다. mskang36@unite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