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를 장부에서 누락시키는 등의 수법으로 1조5천억원 이상을 조작한 SK글로벌 분식회계 사건은 우리 경제에 엄청난 타격을 안겨주고 있다. SK계열사 주가는 추락을 거듭하고 은행 증권 카드사 등 금융사들도 직격탄을 받았다. 지난 10일 이후 14일까지 닷새 동안 거래소시장 시가총액은 무려 2조5천억원이나 줄었다. 불과 나흘새 전체시가총액의 1% 이상이 사라진 셈이다. 안전한 투자를 원해 MMF(머니마켓펀드)에 돈을 맡긴 투자자들도 큰 손실을 봤다. 1999년 대우사태의 '쓴 경험' 탓인지 분식회계 사건이 발표되자 마자 기관과 개인들은 앞다퉈 돈을 빼가고 있다. 지난 11일부터 4일 동안 MMF 등 각종 펀드에서 되찾아간 돈만 무려 14조원에 달했다. 투자자들은 적지 않은 손실을 감수해야만 했다. 그 결과 채권금리는 폭등했다. 나아가 원·달러 환율도 크게 오르면서 금융시장은 요동을 쳤다. 외국인투자자도 차디찬 반응을 보였다. 한국주식을 내다 팔고 해외시장에서 한국정부와 기업이 발행한 유가증권을 외면했다. 당국의 기민한 대책발표에 따라 지난 14일 국내 금융시장은 진정기미를 보였다. 그러나 인위적으로 눌러놓은 시장의 불안요인은 언제 다시 불거질지 모른다. "시장은 거짓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번 깨우쳐 준 셈이다. 이번 SK 분식회계 사건을 굳이 미국의 엔론사태와 비유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엔론사태가 미국과 세계경제에 미친 파장을 거론조차 하기 싫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의 문제점과 그 배경이 무엇인지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제2,제3의 분식회계 사건을 막기 위해서다. SK글로벌 분식회계사건을 접한 회계전문가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무엇보다 분식 수법이 '차입금 숨기기'였다는 점에 주목한다. 회사돈 횡령으로도 악용될 수 있는 이 수법이 활용된데 대해 전문가들은 총체적 부실과 모럴해저드라고 지적한다. 1차책임은 SK글로벌에 있지만 거래은행도 이번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책임이 있다는 것.차입금 확인을 소홀히 한 점은 어떤 설명으로도 정당화할 수 없다. 10년 이상 외부 감사를 맡아온 회계법인은 피감사 기업과 유착 관계를 맺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특히 감독당국은 지난 94년 SK글로벌에 대해 감리를 벌였으나 분식사실을 밝혀내지 못했다. 다시 말해 이번 분식회계 파문은 일개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회계법인 감독당국이 함께 만들어낸 '합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시장은 지금 SK글로벌의 향후 거취를 포함,후폭풍의 파장과 결과에 주목하고 있다. 다행히 주식 외환 자금시장은 당국의 안정대책으로 진정기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불안요인은 완전히 가시지 않았으며 시간적 여유도 많지 않다는 점을 시장은 잘 알고 있다. 채권단은 이번 파문의 여진을 최소화하기 위해 SK글로벌에 관리단을 파견하고 SK측도 그룹차원에서의 자구책을 모색하고 있다. 문제는 채권단과 SK그룹의 이같은 대증적 요법을 시장이 수용하느냐 여부에 달려 있다. 시장의 신뢰,특히 대외신인도를 되찾을 수 있는 거시적이고 종합적인 대책이 시급하다. 눈속임 회계에 대한 철저한 응징도 빼놓을 수 없다. 회계처리의 투명성은 기업 생존을 좌우하는 절대조건이자 시장경제의 존립을 위한 전제조건이란 점을 우리는 다시 한번 인식해야 한다. 시장은 SK글로벌의 분식회계 파문을 결코 잊지 않는다. songj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