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시아 엔지니어 산실 '바우만공대' ] "통행증을 보여주세요." 러시아 모스크바의 중심지 크레믈린에서 자동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바우만공대 출입구에는 이색적인 표지판이 붙어 있다. 바우만 공대의 8개 출입구 가운데 하나인 1번 출입구에 도착했을 때 낯선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학생들이 길게 줄지어 늘어서 경비원에게 학생증을 내보이며 등교하고 있었다. 바로 옆 창구에선 군복을 갖춰 입은 군인들이 통행증을 발급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방문객은 물론 바우만공대 학생들도 이 출입구를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다. 외국인의 경우 미리 연락해둔 대학 관계자가 출입구까지 나와서 데리고 들어간다. 바우만공대를 졸업한 이 대학 국제관계담당 소르니코바 루드미라 부장(40)은 "70년전부터 대학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며 "러시아의 다른 대학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비슷한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루드미라 부장은 "바우만 공대의 경우 아직까지도 군사기술과 관련된 비밀스런 연구를 많이 하고있기 때문에 출입통제시스템을 고집할 수 밖에 없다"고 귀띔했다. 바우만공대(Bauman Moscow State Technical University)는 모스크바 국립공과대학,모스크바 기술공과대학으로도 불린다. 러시아 과학기술의 산실이며 러시아 과학 수준을 가늠하는 지표로도 통한다. 탄탄한 기초과학에 바탕을 둔 엔지니어링(공학) 분야에서 최고의 대학으로 꼽힌다. 1875년에 이미 '러시아를 위한 엔지니어를 키우는 방법'이라는 매뉴얼을 마련, 인재양성에 나섰다. 이 교육 방법론의 우수성이 알려지면서 1877년엔 미국 MIT대 총장이 러시아 짜르에게 바우만공대의 매뉴얼을 배울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우만공대는 물리학부 화학학부 등 기초과학과 이론분야의 세계적 대학인 모스크바대와 더불어 러시아 최고의 공대로 평가받는다. 특히 러시아 우주비행사 9명을 배출하는 등 우주항공분야에서는 세계 으뜸으로 인정받고 있다. 교수진도 물론 세계최고수준이다. 2백60명의 석학박사와 1천6백명의 박사 등 2천3백명의 교수를 확보하고 있다. 오전 11시40분. 수업이 끝나기가 무섭게 강의실에서 쏟아져 나온 학생들은 빵과 커피로 점심식사를 하면서도 토론을 벌인다. 학생들은 바우만공대가 세계적인 대학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한결같이 '기초과학 및 현장학습 강조'와 '자율에 기반을 둔 철저한 학사관리'를 꼽는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 학생들은 학교에서 미리 짜둔 커리큘럼을 받는다. 대개 한 학기에 4∼5과목을 수강하는데 대부분 수학 물리 등 기초과학으로 이뤄져 있다. 항공우주학부 3학년 세르게이 바르시니코프(22)는 "학교 수업을 통해 수학과 물리에 대한 확실한 기초를 닦고 여름방학기간에는 한달정도 산업현장에서 경험을 쌓는다"며 "기초과학에 대한 자신감과 현장경험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서 자리잡는 데 큰 보탬이 된다"고 설명했다. 바우만공대는 학부(4년)와 석사과정(2년)이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대부분 학생들은 석사과정까지 6년을 다닌다. 이 기간동안 학생들은 전공에 관계없이 기초과학을 집중적으로 공부한다. 학생들은 매학기 기말시험을 통해 평가를 받는다. 평소 수업과 학생들의 생활은 철저하게 자율에 맡기지만 학업만은 구술시험을 통해 정확한 평가를 받도록 한다. 구술시험은 보통 3∼4시간동안 진행된다. 학생들은 담당교수와 1 대 1로 시험을 치른다. 교수는 한 학기동안 가르친 내용에 대해 질문하고 학생은 곧바로 대답을 해야 한다. "바우만공대의 구술시험은 교수와 학생이 마주앉아 해당 과목에 대한 이해 정도를 다양한 질문을 통해 정확하게 평가한다"는게 루드미라 부장의 설명이다. 따라서 적당하게 공부하고서는 졸업장을 받을 수 없다. 실제 학생의 졸업비율(석사과정까지 마치는 것 기준)은 70%선에 그치고 있다. 물론 외국인 학생도 예외가 아니다. 석사학위를 딴 졸업생들은 대부분 산업현장과 연구소로 진출한다. 6년을 무사히 마친 졸업생중에 15∼20%만이 박사과정에 진학한다. 바우만공대는 최근들어 정보기술(IT) 분야 기술개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냉전시대에는 미사일 핵무기 등 군사기술에 대한 연구를 주로 했었다. 하지만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군사기술연구 비중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세계적인 추세에 맞춰 IT 분야로 학생들이 몰리고 있다는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모스크바(러시아)=장경영 기자 strong-korea@hankyung.com [ 협찬 :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포스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