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논문 한 줄을 쓰려고 나비 3만마리를 만졌다." 세계적 나비학자 석주명(石宙明·1908∼50) 선생이 인천의 송도고보 교사 시절 나비에 관한 연구논문을 발표한 뒤 주위 사람들에게 던진 말이다. 그의 불타는 집념과 악착같은 노력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일제 식민통치 아래서 교편을 잡았던 그는 10여년 간 75만마리의 나비를 채집,형질을 일일이 측정하고 통계를 내 '개체변이에 따른 분포곡선 이론'을 창안했다. 생물분류학의 새 장을 열었다는 점도 획기적이려니와 이토록 짧은 기간에 이만한 일을 해냈다는 사실은 더욱 놀라운 일이었다. 그가 1940년에 내놓은 영문판 '한국산 나비목록'은 국내외 학계의 이목을 모았고,당시 영국의 대영제국도서관에 소장된 한국인 유일의 저서였다. 나비에 대한 석주명 선생의 열정은 실로 대단했다. 이렇듯 많은 나비를 채집하면서도 나비 한마리 소홀히 다루지 않았다. 설사 병신나비라 해도 그것이 태어날 때부터 기형인지 포획할 때 상했는지를 판별해 태생적으로 잘못된 나비만을 모아 발표한 논문만도 여러 편이다. 그는 평소 "남이 하지 않는 일을 10년만 하면 꼭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을 자주 했다는데,이 지론을 몸소 실천한 셈이다. 오랫동안 역사속에 묻혀있던 석주명 선생의 기념비가 제주도 서귀포에 건립됐다는 소식이다. 그는 제주도와 특히 인연이 깊어 1940년대 초반 경성대 부속 생약연구소 제주도시험장(현 제주대 아열대 연구소)에 근무하면서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제주도 방언집'을 냈고,이어 '제주도의 생명조사서''제주도 문헌집'을 출간했다. 사후에는 '제주도 곤충상' 등 3권의 유고집도 출간됐다. 조선나비를 연구하면서 인문과학분야에도 깊숙이 빠져든 것이다. 석주명 선생이 세계적인 나비학자로 자리매김되고 있지만 아직 그의 유년시절이나 일본 유학시절 등의 기록은 별로 없는 실정이라고 한다. 연구업적 못지 않게 6·25전쟁 와중에서 비명에 간 그의 전 생애를 밝히는 것도 후학들의 몫이라는 생각이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