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2백50여개 대형 할인점에서 2명 뿐인 MBA 출신 점장들이 서울 중계동에서 불과 1㎞ 거리를 두고 맞대결을 벌이고 있다. 미국에서 MBA를 받은 황인혁 롯데마트 중계점장(43)과 MBA에 해당하는 프랑스 에콜 아쉬으세(HEC) 출신인 강성현 까르푸 중계점장(35)이 화제의 주인공들이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이 나온 대학도 같은 서울 신촌에 있다. 롯데마트 황 점장은 서강대 영문학과,까르푸 강 점장은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둘의 인연은 작년말 롯데마트가 까르푸 중계점(2000년 1월 개점) 옆에 대형 점포를 내면서 시작됐다. 강력한 경쟁상대를 만난 까르푸는 1월초 프랑스인 점장 대신 한국인을 '대항마'로 투입했다. 강 점장은 8살 위인 황 점장을 찾아가 먼저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가까운 곳에 새 점포가 들어서면 매출이 떨어지게 마련. 롯데마트 개점으로 까르푸 중계점 매출은 한때 10%나 줄었다. 그러나 강 점장은 여기에 굴하지 않고 중계점이 지역에 굳게 뿌리를 내리는 데 힘을 쏟았다. 프랑스인 점장 시절과 달리 매장 직원들과 터놓고 대화를 나눴으며 매니저들에겐 1대1로 업무 컨설팅을 해줬다. "이 동네에는 장애인들이 유난히 많습니다.주차장에서 열리는 바자회 수익금은 장애인협회에 전달됩니다.이달부터는 매월 두차례 주민들을 대상으로 와인 강좌를 열 계획입니다." 강 점장은 와인 강좌에 직접 강사로 나서기로 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황 점장은 '쓰레기통을 뒤지는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는 중계점 개점을 앞두고 지역주민들의 소비성향을 파악하기 위해 인근 아파트 단지를 돌며 쓰레기통을 뒤졌다. 이런 노력 덕분일까. 중계점은 개점 두달여만에 32개 롯데마트 점포 가운데 하루 매출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알짜점포'로 자리 잡았다. 황 점장은 요즘엔 '놀면서 쇼핑할 수 있는 점포'를 만드는 데 몰두하고 있다. 지하에 푸드코트 게임코너 서점 미용실 등을 다른 점포보다 많이 배치한 것도 그의 아이디어였다. 그는 "라이벌은 물론 까르푸"라며 "두 점포 모두 지역주민들에게 행복을 주고 사랑을 받는 점포가 되어야 하며 그래야 매출이 함께 늘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88년 롯데그룹에 입사한 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가 미국인들이 쇼핑하는 모습을 보고 '할인점맨'이 되기로 결심했다는 황 점장,까르푸에 합병된 프랑스 유통기업 프로무데스에서 근무하며 그리스 벨기에 터키 등 유럽 각국의 유통현장을 둘러보고 온 강 점장. 이라크 전쟁 문제로 미국과 프랑스가 맞서고 있는 요즘 두 나라에서 유학한 두 점장이 한 동네에서 '선의의 경쟁'을 다짐하고 있다. 류시훈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