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이후 지난 5년간 국내 금융산업에는 커다란 지각변동이 있었다. 하드웨어 면에서는 수많은 금융회사가 통폐합됐고 소프트웨어 면에서는 금융관행이 크게 달라졌다. 그같은 변화는 새 정부가 출범한 지금도 진행중이다. 금융계 종사자들과 소비자들은 이런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한국경제신문사는 세계적 컨설팅업체인 AT커니와 공동으로 지난달 10~30일 서울과 수도권 지역 금융소비자 5백명과 금융회사 종사자 80명을 대상으로 방문면접조사를 실시했다. '한국 금융산업의 현황과 과제'를 주제로 한 이번 설문조사는 가계대출시장 금융구조조정 금융.통신 융합화 금융겸업화 방카슈랑스 등 5개 부문별로 실시된 조사결과를 상하 두 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 이번 설문조사에서 가계대출 시장의 가장 큰 문제점은 '소비자 만족도가 낮다'는 점인 것으로 나타났다.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응답자들은 대출한도와 이자율, 만기 등 대출조건 전반에 대해 불만을 표시했다. 대출한도에 대해서는 불만족이 34.2%로 만족(20.2%)보다 많았고 이자율은 49.1%가 불만족스럽다고 답해 만족(12.3%)한다는 답변을 압도했다. 만기에 대해서는 32.5%가 불만을 표했다. 신용대출과 관련해서는 이자율에 대한 불만이 집중적으로 제기됐다. 불만족스럽다는 응답이 66.0%에 달한 반면 만족하는 사람은 7.5%에 불과했다. 이번 설문조사에서는 또 국내 가계대출이 신용대출 위주로 성장해 소비자들의 요구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점도 도출됐다. 98년말과 작년말을 비교할 때 주택자금대출은 매년 8.3%정도 성장한 반면 신용대출의 성장률은 26%에 달했다. 가계대출 시장의 성장이 단기 고금리 신용대출에 편향된 성장추세를 보여온 것이다. 그 결과 작년말 현재 국내총생산(GDP) 대비 신용대출 및 기타담보부대출의 비중은 55.6%에 이른 것으로 추정됐다. 이는 이탈리아 스페인 영국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등 유럽 6개국의 평균치 10.1%에 비해 5배가 넘는 수준이다. 반면 GDP 대비 주택금융의 비중은 10.5%(주택구입목적의 주택담보대출)∼15.6%(주택담보대출 전체)로 유럽 6개국 평균치 35.9%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이같은 가계대출의 실태와 대조적으로 이번 설문조사에서는 대출이용자의 52.8%가 주택구입 또는 전세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대출을 받았다고 답변했다. 또 신용대출을 받은 사람도 33.3%가 주택.전세자금으로 사용했다고 응답했다. 이에 대해 AT커니의 이민섭 부사장은 "현재 국내 금융회사들이 판매하고 있는 주택 관련 대출상품이 단기대출 위주로 구성돼 있어 주택자금 관련 고객의 수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실주택 가치의 54%가량만을 대출받을 수 있는 대출한도 △등기당일 대출 관행 등 대출절차의 불편함 △평균 만기가 2.5년에 불과한 주택담보대출의 단기성향 등을 문제로 꼽았다. 이는 설문조사에서도 그대로 반영됐다. 등기이전이 되고 나서야 대출해 주는 현행 방식에 대해서는 62.3%가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미국이나 유럽에서 활성화한 장기 주택담보대출(모기지론)을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69.3%에 달했다. 결론적으로 이같은 기형적 가계대출 구조를 혁신하고 금융소비자들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세제혜택 확대 등을 통해 모기지론 등 장기담보부 대출을 보다 활성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 금융회사들은 획일적인 대출심사 방법에서 벗어나 개인별 상환능력에 대한 정교한 평가시스템을 도입해 대출한도 금리 등을 보다 탄력적으로 운용할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김인식 기자 sskiss @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