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泳鎬 < 국채보상운동 기념사업회 회장 > 지금 세계에는 두개의 맞바람이 불고 있다. 다보스포럼(WEF)을 중심으로 한 '세계화 바람'과,브라질의 포르투 알레그레 포럼(WSF)을 중심으로 한 '반세계화 바람'이 그것이다. 크루그먼(P. Krugman)은 후자가 전자를 압도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세계화 바람의 한계를 알지만 반세계화 바람의 한계도 알고 있다. 그래서 제3의 바람을 생각해 왔다. 그것을 국채보상운동과 IMF위기 때의 금모으기 운동 발상지인 대구·경북에서는 '대구바람'혹은'서울바람'이라고 부른다. 신정부가 이 바람을 탔으면 한다. 96년전 외채에 시달리던 구한말,나라의 빚을 일반국민들이 갚겠다고,돈이 없으니 술·담배 끊고,금은반지·금은비녀 모아 갚자는 식의 기부운동이 봄바람 이상으로 전국을 휩쓸었다.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이 운동은,채무자와 채권자의 쌍방 모럴해저드의 극복에 의한 채무해결 모델이다. 따라서 국채보상운동의 한쪽 끝에선 IMF의 입장처럼 채무자의 모럴해저드 극복이 강조되고,다른 끝에선 주빌리운동처럼 채권자의 모럴해저드 극복이 요구되고,아탁(ATAC)운동처럼 투기자본 규제가 주장되는 것이다. 국내적으로도 오늘날 가계빚과 카드빚 혹은 농가빚 문제 해결의 기본모델이 이 속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금모으기 운동은 금을 모아 외채 일부를 갚는다는 금액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외채를 갚으려는 국민적 결의와 열의를 보임으로써 외국으로부터 금융상의 신뢰를 받게 됐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기본적으로 신뢰운동이다. 지금 신경제(New Economy)가 신뢰경제(Trust Economy)로 이행하는 시점에 이 운동의 의의가 있다. 그러나 이 운동은 국채보상운동의 채무자 모럴 쪽에만 관계되고,채권자 모럴은 아직 발동되지 않고 숙제로 남아 있다. 그런 점에서는 반쪽 운동이다. 우리는 지난 금융위기 때 세계의 2백여 시민·사회단체가 '대구라운드'를 개최해, IMF가 채무국과 채권국 쌍방책임의 원리 위에 설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IMF는 채권국의 모럴해저드만을 문제삼았다. 우리가 IMF로부터 빌린 돈은 고스란히 채권자의 손으로 흘러가게 해 철저히 채권자를 보호한 것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스티글리츠 교수는 "서방 금융회사들이 한국기업에 돈을 빌려준 것은 자체적인 분석에 따라 위험을 감수하며 취한 조치인 만큼 이들에게도 분명히 책임이 있다"고 했다. 경제학자 제프리 삭스 교수는 IMF위기 때 채권자의 책임도 함께 물었더라면 한국은 2백억∼3백억달러의 덕을 보았을 것이라고 했다. 사실 그 후 대우 파산 때 채권자도 책임이 있다는 논리 위에서 해외채권단으로부터 48억달러 중 30억달러를 탕감받지 않았던가. 우리가 외환위기를 극복하는데는 IMF의 도움이 컸다. 그러나 IMF가 반세계화 바람에 날아가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것은 한국의 '성공'에 의존하는 바가 실로 컸다. 그러나 IMF는 채무자의 책임만 추궁하고,채권국의 책임은 묻지 않았다는 IMF 자체의 모럴해저드 극복 숙제가 남아 있다. 신뢰경제시대에 IMF의 신뢰위기 문제라고 해도 좋다. IMF는 한국에 빚이 있다. 우리는 그 빚을 IMF 부설 '국제금융기술훈련센터'(가칭)를 한국에 세워 세계의 젊은이들이 최신 금융기술을 훈련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식으로 해결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채무자 모럴의 상징적인 곳에 채권자 모럴의 상징으로 이런 센터가 세워진다면,세계경제에 있어서 신뢰경제의 멋진 출발점이 되지 않을까? 한국의 금융허브 구상도 궤도를 타게 되지 않을까? 제3의 바람에 스티글리츠 교수 같은 훌륭한 경제학자의 참여를 기대하고,또 신 정부의 관심을 기대한다. 그러나 새 정부의 '해외경제 자문위원장'에 스티글리츠 교수를 위촉하려 한다는 연이은 보도에 걱정된다. IMF나 IBRD와 매우 험악한 관계에 있는 경제학자를 정부의 정책자문위원장으로 영입하는 것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 경제사상과 국가전략 혹은 사회운동과 정부정책은 구별돼야 한다. 안보문제에 있어서 미국과의 관계에 고도의 지혜가 필요한 것처럼,경제문제에 있어서 국제자본과의 관계에도 고도의 지혜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