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민정부가 출범한 지난 93년 봄.이인제 당시 노동부장관이 그동안의 관행과 제도를 완전히 뒤엎는 개혁노동정책을 펼쳐 산업현장을 큰 혼란에 빠뜨린 적이 있다. 이 장관은 노동현장에 법과 원칙을 확립한다며 '무노동 무임금'등 법원판례에 어긋나는 행정지침 17개 조항을 과감히 손질했다. 또 불법파업을 벌이다 구속 수감된 수백명의 노조원들을 원직·복직시켜 주도록 해당 회사에 압박을 가했다. 이후 이 장관이 노사현장에 나타날 때마다 근로자들은 '대부'를 맞이하듯이 "이인제∼"를 연호하며 대환영을 했다. 이 장관의 개혁은 그러나 기업들에 엄청난 아픔으로 다가왔다. 무엇보다 노조의 무리한 요구와 강경투쟁이 늘어 타협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인사경영권 참여,무노동 부분임금,해고자 복직·원직,유니온숍제 도입 등은 협상테이블의 단골메뉴가 됐고 이를 둘러싼 노사 줄다리기는 수개월씩 계속됐다. 이때문에 산업현장은 분규의 회오리에 휩싸였고 기업들은 경영보다는 협상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야 했다. 한마디로 노사현장이 싸움판으로 변한 것이다. 40대 중반의 젊고 패기만만한 정치인 출신 장관의 개혁이 1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행정경험이 전무한 50대 중반 학자출신 장관에 의해 다시 모습을 드러낼 태세다. 신임 권기홍 장관은 취임사에서 "노동부는 노동자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야 한다. 재계나 경제부처를 신경쓸 필요는 없다"고 강조,또다른 형태의 개혁정책이 강행될 것임을 시사했다. 권 장관은 대통령직 인수위 간사 시절 비정규직 균등대우,산별교섭 유도 등 재계와 노동부의 반발을 불러일으킨 쟁점들을 정책과제로 채택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할때 진보성향인 권 장관의 앞으로의 행보는 불을 보듯 뻔하다. 시대도 변했고 사람도 바뀌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어설픈 개혁은 혼란만 부채질한다는 점이다. 대중을 의식한 포퓰리즘적 개혁은 자칫 '화(禍)'를 초래할 수도 있다. 신임 노동장관은 10년 전의 실패한 개혁실험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 좀더 신중하게 노동문제에 접근했으면 한다. 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