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취임사를 통해 국민주인 정치,한반도 평화증진,동북아 물류중심 및 금융중심지화,지방분권과 균형발전,교육혁신,부정·부패근절 등 임기 중 국정방향을 밝혔다. 역대 대통령 취임사에 비해 수사학적 표현을 줄인 대신 평이한 문장을 일반서민에게 쉽게 다가오는 말솜씨로 전달해 과연 서민 대통령 연설다웠다. 노 대통령이 밝힌 국정방향에 대해선 전반적으로 수긍이 간다. 그러나 다수 국민이 "맞습니다,맞고요"로 환호작약할 수 없었던 것은 다음 몇가지 의문 때문이다. 첫째,'세계의 안보상황이 불안'하고 '북한 핵문제'가 '국제사회 우려'가 되고 있다는 올바른 지적이 뒷심을 잃었다. 북한이 그간 햇볕정책의 수혜에도 불구하고,24일 미사일을 발사한 것은 분명 취임식 전야제의 축하 폭죽놀이가 아니었다. 이번의 '실험발사'는 새 정부와 경축 외빈들에 대한 섬뜩한 협박 메시지가 실려 있다. 노 대통령은 한반도를 '평화지대'로 바꾸기 위해 △대화를 통한 현안해결 △상호신뢰 △남북 당사자 원칙 △대내외 투명성을 높여 국민참여 확대라는 4대 원칙을 내세웠다. 북한 핵개발 문제에 대해서는 '용인될 수 없다… 포기해야 한다.(그러면 많은)지원을 제공할 것'이라는 입장을 천명했다. 그러나 이라크 전쟁 다음에 닥칠 미국의 공격에서 벗어나려 미국과 직접 협상을 도모하는 게 북한의 당장 다급한 입장이다. 이러한 북한을 상대로 경제지원 약속만 가지고서는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 망아지는 채찍의 매서움을 알아야 당근의 고마움도 안다. 버릇 나쁜 사람도, 정권도 그렇다. 북한이 핵개발 하면 우리도 맞대응하겠다는 결의를 보여야 한반도 비핵화 가능성이 높아진다. 취임사에 이 같은 결연한 의지가 빠져 아쉽다. 둘째,새 정부 청와대팀의 특징 하나는 과거같은 경제수석 직책의 부재이다. 정책실장,경제보좌관 등 새로운 직책의 업무분담이 불분명하다. '국민이 힘을 합치면 못할 일이 없다'는 것은 좋은 연설문장이지만,국가의 자원제약은 엄연하다. 낱낱이 뜯어보면 좋게 보이는 사업일지라도 총괄하면 예산제약의 틀을 벗어날 수 있다. 각 부처의 사업의욕을 이 틀 속에 얽어 우선순위를 정하고,대통령에게 '안됩니다'를 직언하는 것이 본연의 직분인 자리가 청와대 안에 불가결하다. 이 기능을 간과하면 재정이 거덜나고,그 적자는 결국 화폐 또는 국채증발로 귀착된다. 인기영합 정부가 이래서 무섭다. 셋째,대통령 임기가 5년이라는 시간적 제약에 대한 인식이다. 새 정부의 시간인식이 두가지로 표출된다. 하나는 새 정부의 팀 구성을 보면 이른바 '진보적'성향의 새 얼굴이 대거 등용됐다. 이것은 DJ 정부개혁이 관료와 기득권 세력의 저항에 부딪쳐 좌절했다는 인식 때문에 초기부터 강도 높은 개혁조치들을 현실성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이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것이다. 현실세계의 제약 조건들에 밝은 직업관료들이 집행과정에서 소극적 저항과 희생이 불을 보듯 내다보인다. 다른 하나는 시간제약 인식의 부족이다. 이는 사뭇 의욕적인 사업계획들에서 엿보인다. 인수위가 정리한 과제리스트가 길다. 결국 선택과 집중이 요청되고,일부 공약(公約)을 공약(空約)화하는 용단이 뒤따라야 한다. 차기 정부에도 일을 연계시켜주는 정권 간의 분업의식이 있어야 한다. 넷째,대선 때 상대 후보를 찍은 반대파를 아우르는 화해의 손길이 없다. 이른바 5060에 대한 고려,중산층 축소에 대한 우려,기업인에 대한 격려를 연설문 행간을 비집고 읽어야 가물가물하게 읽힌다. 마지막으로,나라가 '도약이냐 후퇴냐의 갈림길에 서 있는'상황에서 모든 국민이 흘릴 땀과 함께,치러야 할 희생에 대한 언급이 있어야 했다. 근로자를 포함한 모든 집단이기주의에 자제할 것과 협조를 당부했어야 한다. '반칙과 특권'추구현상이 '사회 지도층'은 물론 모든 계층에 만연돼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래야 "맞습니다,맞고요"를 연발할 수 있다. 짧은 시간의 연설문에 시비곡직을 길게 따질 것 없다. 국운이 달려있는 5년간 노 대통령의 특기인 임기응변을 발휘,위기를 극복하고 성공한 대통령으로 기록되기 바란다. pjkim@ccs.sog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