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건 총리 후보자 인준안이 26일 우여곡절 끝에 통과됐다. 당초 처리키로 했던 대통령 취임일을 하루 넘겨서다. 그나마 다행이지만 새 정부 출범을 온 국민이 축하하는 날에 정치권이 찬물을 끼얹은 것은 분명 볼썽사나운 모습이었다. 정치권이 새 정부의 발목을 잡은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5년 전 김대중 정부가 출범할 당시 김종필 총리 후보자 인준안이 취임일에 처리되지 못했다. 당시 DJP(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종필 자민련 총재) 공조가 정권을 빼앗긴 결정적인 원인으로 꼽고 있던 한나라당이 JP의 총리 기용에 반대했던 탓이다. 이번은 대북 송금 특검제 법안 처리가 장애물이었지만 당리당략을 우선하는 정쟁 우선의 정치 행태라는 점에서 다를 바 없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각기 그럴 듯한 이유로 포장했다. 하지만 국민 입장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그들만의 변명에 불과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민주당은 집권당으로서 국정을 적극적으로 뒷받침하고 국회를 원만하게 이끌어갈 1차적 책임이 있다. 수의 절대 열세 속에서 타협은 뒤로한 채 인준안만 처리하고 보자는 일방주의적인 행태를 보인 것은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특검법안을 인준안과 사실상 연계시킨 한나라당 태도도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다. 국회 과반수 의석을 14석이나 넘게 확보하고 있는 제1당으로서 수의 횡포에 매달린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미 고건 총리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도 끝난 마당에 고 후보자가 총리로서 부적격이라는 판단을 내렸다면 인준안을 부결시키면 될 일이다. '인준안은 통과시켜 줄테니 특검을 받으라'는 식은 국민을 무시한 당리당략적 발상에 다름 아니다. 여야가 인준안과 특검법안 처리를 놓고 이틀간 보여준 행태는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언급한 '국민이 주인이 되는 정치'나 여야가 대화하고 타협하는 '상생의 정치'와는 거리가 멀다. 마치 우리 정치권이 '나쁜 전통 만들기' 게임을 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갈등과 대결로 점철된 5년 전 모습이 자꾸 떠오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입만 열면 '국민을 위해서'라고 말하고 있다. 이재창 정치부 기자 lee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