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는 어느 것이든 시대와 사회상을 드러낸다. 대중가요도 마찬가지다. 때문에 어느 세대에게나 유독 동질감과 유대감을 느끼고 마음을 틀 수 있는 '그들만의 노래'가 있다. 40∼50대에게는 '아침이슬' '친구' '작은 연못' '백구' '늙은 군인의 노래' '상록수'같은 김민기의 곡들이 그렇다. 김민기가 만든 노래들은 선동적이지 않다. 곡은 서정적이고,가사는 슬프거나 교훈적(?)이다. 그의 노랫말은 한 대목도 거칠거나 경박하지 않다. '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 돌보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 비바람 맞고 눈보라 쳐도 온누리 끝까지 맘껏 푸르다'로 시작되는 '상록수' 역시 마찬가지다. 대학을 그만두고 부평의 봉제공장에 다니던 시절 뒤늦게 합동결혼식을 올리는 동료들을 위해 만들었다는 노래답게 현실이 비록 서러워도 손 맞잡고 이겨 나가자는 평범한 내용이지만 서슬 퍼런 유신정권 하에서 젊은층의 의식화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금지곡이 됐다. 무엇이든 못하게 하면 더 간절한 법, 결혼축가는 저항가요로 변해 퍼져 나갔다. 87년 해금된 '상록수'는 98년 정부 수립 50주년 기념 TV캠페인 주제곡(박세리가 양말 벗고 공 쳐내는 장면과 함께)이 됐고, 지난해엔 '노랫말이 좋고 대중성이 있어'라는 설명과 함께 3.1절 기념식 축가로 선정됐다. 그리고 이번엔 대통령 취임식장에서 울려 퍼졌다. 상록수는 '거치른 들판의 푸르른 솔잎처럼'이란 부제가 보여주 듯 의지와 희망을 담은 곡이다. 작곡가 베르디가 아내의 죽음으로 절망한 가운데 쓴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날아라 생각이여, 황금날개를 달고'로 시작, '고난에 고결한 힘을 불어넣자'로 끝난다)이 오스트리아 압제하에 있던 이탈리아인들의 민족의식을 일깨우고 오늘날까지 애창되는 것처럼 좋은 노래는 시대를 뛰어넘는다. 뿐이랴. 외로움과 간절한 희망을 섞어 쓴 노래는 듣는 이의 좌절과 슬픔을 씻어내는 놀라운 힘을 지닌다. 우여곡절 끝에 국민가요로 다시 태어난 '상록수'의 노랫말처럼 새 정부와 우리국민 모두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아가기'를 기도한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