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첫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하면서 "사정(司正)활동의 속도조절이 가능하다면 그렇게 해서 국민불안감을 조성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태원 SK㈜ 회장을 구속한데 이어 다른 대기업그룹에 대해서도 검찰수사가 임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특히 주목하게 된다. 노 대통령이 "정권이 출범하면 사정과 조사활동이 소나기 오듯 일제히 일어나는 경향이 있어 국민은 일상적인 것이 아닌 정권초기현상으로 느낄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 것은 사정활동이 동일한 잣대로 일관되게 추진돼야 한다는 원칙을 분명히 한 것이다. 우리가 검찰의 대(對) 대기업수사에 대해 우려를 갖는 것도 따지고 보면 바로 그런 맥락에서다. 최 회장의 구속을 부른 SK그룹의 JP모건 이면계약은 물론이고 한화그룹 분식회계, 삼성그룹 BW(신주인수권부사채) 배정논란 등 최근 들어 사정당국이 문제삼고 있는 사안들은 하나같이 어제 오늘 일어난 일이 아니다. 귀를 막고 있지 않았다면 모를래야 모를 수 없었던 일들이다. 외국 투자은행과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사건이거나, 발생 당시 세법상 과세가 가능하냐 그렇지 못하냐는 논란이 빚어져 여러차례 보도됐던 사안들이기도 하다. 시효가 만료되지 않은 이상 검찰이 수사를 벌이는 것은 하등 비난할 이유가 없다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새 정부 출범과 때맞추어 해묵은 사건들을 모두 다시 들춰내 형사사건화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지는 의문이다. 특히 내부거래 등 기업범죄는 지금까지 공정거래법에 따른 과징금부과 등으로 다스려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런 감이 있다. "인신구속의 경우 국민감정 해소차원이라는 인식을 갖도록 해서는 안될 것"이라는 노 대통령의 말은 그런 점에서도 당연하다.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갖가지 형태로 '대기업 겁주기'가 되풀이되는 것은 누구를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우리는 대기업이라고 해서 치외법권적 혜택을 누려야 한다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구속-형사처벌이 꼭 능사라고 보지도 않는다. 경제사범, 특히 증거인멸이나 도주의 우려가 없는 기업범죄의 경우라면 인신구속은 가능한 한 피해야 한다. 과징금.벌금도 충분히 유효한 제재수단이다. 대(對) 대기업사정에서 동일한 잣대를 일관되게 유지하는 것은 기업을 위해서는 물론이고 새 시대가 요구하는 정.경(政經)관계를 위해서도 긴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