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년 10월 '보령약국' 창업 ] "기업이 신뢰를 잃으면 사람들이 건강을 잃는 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특히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약업인으로서 신뢰와 성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김승호 보령그룹 회장(71)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신뢰와 성실'을 강조한다. 이 두 단어에 그의 경영철학과 인생철학이 담겨 있다. 그는 신뢰와 성실을 바탕으로 '종로5가 보령약국의 신화'를 창조했고 '작지만 아름다운 기업집단 보령그룹'을 일궈냈다. 김 회장은 "보령약국에서 보령제약으로,다시 보령그룹으로 이어진 지난 46년동안 성실과 신뢰를 지키고자 노력했다"며 "노력의 결과에 대한 평가가 어떠하든 스스로 그 의지를 버린 적이 단 한번도 없었기에 나는 지금 행복한 경영자요,후회없는 노인일 수 있다"고 말한다. 김 회장은 1932년 충청남도 보령군 웅천면의 작은 산골에서 태어났다. 그는 약들과 놀면서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부친의 사업실패로 기울어진 가세를 만회하고자 그의 친형이 웅천면 신작로가에 '대창약방'을 열었기 때문이다. 약방은 '초등학생 김승호'의 놀이터였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매일 그곳으로 달려갔다. 비록 몇가지 약들이 조악한 포장으로 놓여있었지만 어린 그의 눈에는 하나같이 소중하고 대견스러워 보였다. 그 약들이 사람들의 아픈 곳을 낫게 해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는 형이 귀찮아할 정도로 약에 대해 꼬치꼬치 캐묻고 이따금 약방을 홀로 지킬 때면 마치 약사라도 된 듯 어깨가 으쓱해졌다고 한다. 약과의 인연은 중·고등학교 때도 계속됐다. 서울 숭문학교에 입학해 거처로 정한 곳이 사촌 형이 운영하던 종로5가 홍성약국의 2층 다다미방이었다. 그는 틈틈이 약국일을 거들면서 약의 중요성과 가치를 깨달았다. 고등학교 졸업반 때 터진 6·25의 와중에서 우여곡절끝에 장교로 임관한 김 회장은 57년 봄 군복을 벗었다. 사업가로서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대창약방에서 약에 대한 호기심을 키우고 홍성약국에서 약의 의미를 접한 경험은 그를 약국 경영의 길로 이끌었다. 우선 홍성약국에 찾아가 본격적으로 실무경험을 쌓았다. 5개월여가 지난 즈음 김 회장은 약국개업을 결심하고 전 재산과 다름없던 돈암동 신혼집을 팔아 3백만환을 마련했다. 이 돈으로 어렵사리 10평 남짓의 허름한 문방구점을 인수,약국을 열었다. 1957년 10월1일,종로5가 한 모퉁이에 '보령약국'이란 간판이 내걸린다. 김 회장의 고향 이름 '보령'(保寧)이 약업계의 대명사로서의 출발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