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싱카를 만들던 로터스가 1957년 처음으로 일반도로용 스포츠카인 '엘리트'를 내놓았다. 엘리트는 섀시를 보디와 동일하게 한 FRP제 모노코크라는 독창적인 구조였다. 무게는 5백90kg으로 가벼웠으나 생산공정이 복잡해 비용이 많이 들었다. 품질문제까지 초래했다. 로터스는 이어 1962년 베스트 핸들링카로 유명한 '엘란'을 출시했다. 59년 말 'M2' 프로젝트명으로 기획에 들어간 엘란은 엘리트의 실패경험 때문에 낮은 판매가격과 높은 이익률이 가장 중요한 목표로 설정됐다. 로터스 창시자인 콜린 채프만은 당시의 경영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후속차에 큰 기대를 걸었다. 채프만은 개발진에게 "지나치게 크지 않고 길지 않으며 무겁지 않은 차"를 만들라는 지시를 내렸다. 개발진은 엘리트의 실패 원인이 생산성을 고려하지 않은데 있었다고 보고 M2에서는 정확한 위치에서 조립할 수 있는 보디설계와 생산시 강한 고정이 가능한 알루미늄 합금 보빈을 사용했다. 새로 개발한 FRP 유니몰드 방식을 적용해 제조비용이 적게 들면서도 정밀도가 좋은 FRP 보디를 만들 수 있었다. 이같은 방식은 경제적으로 엘란이 성공한 최대 무기였다. M2는 또 당초 기획했던 포드제 엔진 대신 획기적 유니트인 로터스 트윈캠이 채택됐다. 리어의 독립식 서스펜션, 전륜 디스크 브레이크 등 새로운 기술도 차례로 도입했다. M2 개발에서 가장 큰 골칫거리는 섀시였다. 배기량의 확대는 당연히 파워 증대를 가져와 FRP 모노코크로서는 한계가 있었다. 프로젝트 리더였던 론 히크만은 오픈형의 M2에서 FRP 모노코크는 약해 충돌이 일어날 경우 수리가 힘들다고 채프만 사장을 설득했다. 대신 X자형 백본 섀시 프레임을 제안했다. 이 프레임은 차체에 대한 응력을 받아내는 구조로 차체의 생산성이 향상되는 동시에 루프를 제거한 오픈 스타일도 제작가능하게 했다. 엘리트와 동일한 경량이면서도 페라리 308GTB에 버금가는 비틀림이 적은 차를 로터스가 개발해 낼 수 있었던 이유다. 김상권 < 현대.기아차 연구개발본부장.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