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지하철 대참사는 실로 어이 없고 기막히다. 안전불감증이 빚은 처참한 인재라는 것도 그렇지만 신병을 비관한 사람의 방화 때문이라는 건 더더욱 할 말을 잃게 만든다. 불특정 다수에 대한 이같은 무차별 공격은 아무 이해관계도 없는 선량한 피해자를 양산, 사회적 불안감을 조성하는데다 모방 범죄를 부를 수 있다는 점에서 진정 끔찍하다. 묻지마 범행은 정신질환자의 돌출행동인 경우가 많지만 좌절과 분노, 상대적 박탈감에 대한 화풀이인 수도 적지 않다고 한다.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회에 대한 적개심의 표출이라는 것이다. 실제 1999년 4월 덴버시 컬럼바인고교의 무차별 총기난사 사건은 왕따 당한 학생의 분풀이,지난해 10월 워싱턴 일대를 공포에 몰아넣은 연쇄저격 살인사건은 코너에 몰린 40대와 10대의 짓이었다. 문제는 국내에서도 이런 화풀이성 범죄가 많아진다는 사실이다. 대구에서 지난 연말 발생한 연쇄 차량방화사건이나 올 들어 부산에서 일어난 차량 총격사건 모두 분풀이 범행으로 추정되고 있다. 서울시 소방 방재본부가 지난해 방화사건 7백19건을 분석한 결과 불만해소용이 1백36건으로 99년 1백1건보다 늘었다는 보고도 나왔다. 화풀이 범죄의 증가는 물질 만능주의와 인명경시 풍조로 인한 가치관 혼돈 속에서 비롯되는 사회병리 현상의 일종이라고 한다. 부동산투기 복권열풍 등 한탕주의,대중매체의 폭력 만연으로 인한 범죄에 대한 무감각 등도 촉발요인으로 꼽힌다. 물론이다. 돈이면 다 된다는 식의 배금주의,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가운 시선이 요인인 건 두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불행의 원인을 무조건 사회 탓으로 돌리고 자신 때문에 아무 상관없는 다른 사람들이 죽어도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무감각 또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정신질환자의 미친 짓이라고 치부해버리기엔 결과가 너무 소름 끼친다. 인간에겐 어떤 극한 상황도 극복할 수 있는 자유의지가 있다. 부조리한 세상 탓만 하기에 앞서 인간의지에 대한 믿음과 그것을 지킬 수 있도록 하는 인간애를 회복시키는 일이야말로 진정 시급하다 싶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