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장한평역 뒤편에 있는 장안평중고차시장은 국내 중고차시장의 원조다.


역사도 가장 오래 됐고 규모도 가장 크다.


1만평의 야외전시장에는 한꺼번에 2천3백대의 차량을 세워둘 수 있다.


지난 79년 문을 연 후 24년간 1백만대의 중고차가 이곳에서 거래됐다.


이는 서울에서 거래된 중고차의 절반에 가깝다.


지금도 중고차 단일시장으론 전국에서 으뜸이다.


하지만 장안평은 현재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


전국 곳곳에 수많은 중고차매장이 들어선데다 불황까지 겹쳤기 때문이다.


일요일인 지난 16일 오후 2시.


장한평역 6번 출구 앞은 중고차를 보러온 손님들과 호객꾼들로 북적거린다.


하지만 손님보다는 호객꾼 숫자가 월등히 많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날씨가 풀리는 2월 중순은 대목이었죠.통학용 경차를 사러나온 대학생 손님들로 매장이 꽉 차 어깨를 부딪치지 않고는 길을 지나가기도 힘들 정도였으니까.그런데 둘러보세요.손님보다 상인이 더 많잖아요."


장안평에서 23년간 장사를 했다는 상인의 말이다.


이 상인은 "요즘은 겨우 이틀에 한 대꼴로 팔고 있다"며 "외환위기 때보다도 상황이 나쁘다"고 덧붙였다.


장안평은 지금 불황에 빠져 있다.


요즘 거래되는 중고차는 출고된 지 1년도 안된 새차나 다름없는 차뿐이다.


젊은 부부와 상담을 하던 한 판매원은 "97년식이나 98년식 중에는 팔리지 않을 것 같아 아예 받지 않는 모델도 있다"고 설명했다.


장안평 일대에 난립한 무허가 업자들이 시장 이미지를 훼손시키는 것도 큰 문제다.


장안평자동차매매사업조합 문형옥 이사장은 "현재 장안평에서 팔려나가는 자동차의 70%가 무허가 업자들의 손을 거친다"며 "사업자들이 임의로 성능점검표를 조작하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상호에 서울시의 허가번호가 쓰여 있지 않은 업소는 모두 무허가로 봐도 무방하다"고 덧붙였다.


장사가 안되자 허가받은 일부 업자들이 무허가 상인들의 뒤를 봐주면서 뒷돈을 챙기는 사례도 많아졌다.


문 이사장은 "5만원만 주면 명의 이전에 필요한 인감이나 성능점검표를 만들어준다"며 "허가상인들이 자기 밥그릇을 내동댕이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재래 중고차시장의 위기는 장안평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서울 외곽에 속속 들어서고 있는 중고차 매매업체들은 한 달에 수십개씩 문을 닫는다.


한 상인은 "장안평은 상인들이 건물과 토지를 소유하고 있어 임대료 걱정이라도 덜지만 서울 외곽에 있는 군소 업자들의 상황은 훨씬 심각하다"고 설명했다.


내우외환의 위기 속에서 장안평을 살리려는 일부 상인들의 노력은 눈물겨울 정도다.


상인들은 지난해 4월부터 모든 차량에 정부 공인 성능점검 업체 카체커스가 만든 성능점검표를 붙여주고 있다.


애프터서비스도 눈에 띄게 개선했다.


장안평조합의 한 상인은 "최근에는 판매 후 1만5천㎞를 뛸 때까지는 엔진미션이나 타이밍벨트 같은 부품들을 무료로 고쳐주고 있다"며 "단골손님을 늘리는 길은 '서비스 개선'밖에 없다는 공감대가 상인들 사이에 형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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