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가 한국의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2단계나 내렸다. 이것을 두고 '무디스의 기습'이라는 표현을 쓴 신문도 있었다. 이 여파로 환율은 출렁거리고 주가는 하락했다. 그런데 신용등급 하락은 정말 기습적인 일이었는가. 아니다. 무디스 등 신용평가회사들이 국가신용을 평가할 때 가장 중시하는 것이 위험도(risk)다. 무디스가 등급을 바꾸기 전 이미 여러 곳에서 '한국이 위험하다'는 경고음이 들렸다. 외국 정치학자들도 한국이 북핵에 무관심한데 대해 놀라거나 걱정한 지 오래다. 그들은 북핵 때문에 외국인들은 한국을 위험한 나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며 조만간 경제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따라서 S&P와 피치 등이 아직 신용등급을 내리지 않았다고 해서 안심할 일이 아니다. 무디스가 보기에 위험한 일은 S&P가 보기에도 위험한 일이다. 신용등급 하락으로 주가가 떨어지는 것도 문제지만 경제 전체로 볼 때 환율 불안이 더 큰 문제다. 환율이 불안정해서는 한국에 투자하기를 꺼릴 것이다. 동북아 중심국가가 되겠다는 꿈도 버려야 할 판이다. 금융시장에서는 무디스의 등급변경이 사전에 누설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역외선물환시장(NDF)에서는 지난 주말부터 달러화에 대해 원화가치가 폭락했기 때문이다. 서울 증시에서는 며칠 전부터 외국인들이 한국의 대표기업인 삼성전자 등을 내던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한국의 신용등급이 떨어질 것이라고 확신했던 것 같다. 그러나 증시속락과 환율 급등을 보고도 당국은 "안심해도 좋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심지어 "그동안 원화가치가 약간 고평가돼 수출에 문제가 있었는데 이제 정상화되는 과정"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또 등급이 낮아진 게 아니라,등급에 따라붙는 전망치가 낮아졌을 뿐이라는 주장도 한다. 이것은 전망치도 등급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하는 이야기다. 북핵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한 우리의 국가위험도는 낮아질 수 없다. 따라서 북핵문제가 환율은 물론 금융시장 전반에 장기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환율은 상승할 수도 있으나 불안하게 움직이는 게 문제다. 들리는 말로 일부 부유층은 벌써 달러 사재기에 들어갔다고 한다. 서울에 있는 외국계금융회사들은 이미 수일전부터 달러매수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추세가 지속되면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화가치는 계속 약세를 보일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미 악재가 다 노출됐으니 당분간 환율이 1천2백원대에 머물것으로 전망한다. 그러나 이것은 북핵문제가 더 이상 악화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또 국내의 소비위축이나 유가상승에 따른 국제수지 악화 등도 환율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받아들일 수 있는 전망이다. 미국의 경기침체,재정수지 악화 등으로 볼 때 당분간 달러화는 약세를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환율은 달러화가치에만 연동되는 게 아니다. 우리가 국제사회에 얼마나 믿음을 주느냐도 중요한 요인이다. 당장 할 일은 다른 신용평가회사의 동향을 면밀하게 관찰하는 일이다. 그들이 중시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서 빨리 대처해야 한다. 우리는 그동안 북핵문제를 동족간의 문제로 보거나,지나치게 과민한 미국을 설득하는 문제로 보아온 느낌이 있다. 그래서 북한을 달래거나 미국에 잘 설명하면 쉽게 해결될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 무디스의 등급 강등에서 보듯,국제사회는 북핵문제를 '위기상황'으로 보고 있다. 여기서 누가 옳으냐 하는 것은 따질 필요가 없다. 핵문제에 대해서는 우리도 위험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며,그런 관점에서 대응책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시켜야 한다. 새 정부가 들어서는 마당에 환율 금리 등 가격변수가 안정되지 않으면 경제안정은 이룰 수 없다. 우리 주장도 중요하지만 외국투자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사고의 틀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 사고의 틀이 바뀌지 않는 한 환율전망은 무의미하다. 환율은 홍보를 잘 해서 안정시킬 수는 없다. 경제정책이나 북핵에 대한 대응자세부터 다시 점검해 보아야 한다. hansoo-yu@hanmail.net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