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외교가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현직 대통령과 차기 대통령이 북한과 미국에 보낸 특사단은 김정일 위원장과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만나지도 못했다. 북한 핵개발을 둘러싼 미국과 북한의 대치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한국은 양쪽의 비위를 맞추려 노력하고 있지만,어느 쪽으로부터도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 북한은 미국과의 직접협상을 고집하면서 핵문제에 관한 한 우리를 상대해 주지도 않으려 하고,미국은 내부적으로 주한미군 철수문제까지 논의할 정도로 한·미동맹의 현실에 대해 부정적이다. 국제사회는 이라크사태와 북한 핵문제로 떠들썩한데도,우리 내부에서는 남북한 철도연결,금강산 육로관광을 서두르고 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한국을 동북아경제중심국가로 만들겠다는 비전을 제시하고 있는 가운데,국민적 의혹을 받아온 대북송금문제는 정치권을 강타하고 있다. 한국외교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먼저 북한 핵문제에 관한 우리 정부의 딜레마를 보자.우리 정부로서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용인할 수 없다. 북한이 핵무기를 갖게 되면,한반도 주변정세가 불안정해질 것이고,그 결과 한국에 대한 국제시장의 신뢰도가 떨어져 경제적 곤경에 처할 수 있다. 또 북한의 핵무장은 한국 주도의 통일을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고,한국의 미국에 대한 군사적 의존을 심화시킬 것이다. 북한 핵무기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핵우산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우리 정부는 한반도에 다시 전쟁이 일어나는 것도 용인할 수 없다. 그런데 북한은 미국이 자신들의 핵시설을 공격하면 한국 -그것이 서울이든 주한미군이든-을 공격하겠다는 입장을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따라서 우리 정부는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해 미국이 군사적 옵션을 선택하는 것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한국 내부의 반미정서는 북한으로 하여금 핵카드를 사용한 모험을 계속할 여지를 넓혀주고,미국의 대북전략 선택에 있어 한국에 대한 고려를 줄이도록 만들고 있다. 그 결과 우리 정부 의도와는 반대로 핵위기는 고조되며 한국외교가 설 땅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대미관계 역시 딜레마에 빠져 있다. 올해는 한·미동맹 50주년이다. 그 동안 한·미동맹은 한국의 안보와 경제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그러나 이제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한국은 강력한 산업국가로 거듭났고,북한의 경제난을 볼 때 한국민의 대북 자신감은 당연하다. 따라서 미군의 한국주둔 필요성을 포함해 한·미관계를 보다 수평적 관계로 조정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인간관계에서도 그렇듯 국가 사이의 관계를 조정하는 일도 '현실'과 '이익'에 따라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한·미관계는 역학관계와 이해관계의 모든 측면에서 한국에 불리한 상황이다. 주한미군의 철수를 걱정해야 하는 쪽도 우리이고,미국자본의 철수나 미국시장에 대한 접근 제한을 걱정해야 하는 쪽도 우리다. 미국은 우리를 위협할 수 있는 수단이 많은데,우리는 미국을 위협할 수단이 거의 없다. 따라서 한·미관계가 나빠질수록 아쉬워해야 하는 쪽은 우리이고,이에 비례해서 우리 입장은 더욱 불리해진다. 한국을 동북아 물류·비즈니스 중심지로 발전시키겠다는 인수위의 비전은 우리 국민에게 희망과 용기를 갖게 한다. 그러나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많은 요인들을 고려해야 한다. 우선 동북아,동남아 여러 국가들이 이러한 목표를 경쟁적으로 추구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 정부가 그러한 목표를 공개적으로 추구하면 주변 국가들로부터 불필요한 견제를 받을 수 있다. 대외관계는 우리나라의 안보와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안보 불안이 곧장 경제 불안으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을 감안할 때 오늘날 한국외교가 직면하고 있는 상황은 결코 가벼이 볼 문제가 아니다. 차기정부와 여야정당 언론 시민단체 국민 모두가 기로에 선 한국외교의 현실을 직시,자유롭고 활발한 논의를 통해 한국외교가 나가야 할 방향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jychung@khu.ac.kr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