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새정부의 재벌정책이 다시 선회하고 있는 것 같다. '점진적·자율적·장기적' 추진 방침이 '총체적·단기적·전면적'으로 방향을 트는 모양이다. 특히 엊그제 노무현 당선자의 발언을 계기로 집단소송제,상속세 포괄과세,출자총액제도 유지 등 소위 재벌개혁 3대 과제는 출범 초기에 반드시 관철시킨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당선자 스스로가 "재벌개혁 과제는 흥정의 대상이 아니므로 정면돌파하겠다"고 못박았고 인수위원들도 "재벌개혁은 시빗거리가 될 수 없다"며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는 보도다. 지난 4일 인수위에서 열렸던 재벌개혁 간담회에서도 강경론이 주류를 이루었고 인수위 대변인은 "재계 일각에서 현실을 왜곡하거나 오도하면서 정책의지를 흔들고 시험하려 한다는 인상을 노 당선자가 받고 있다"는 설명으로 인수위 분위기를 전했다. 우리는 당선자의 발언이나 대변인 등 관계자들이 전하는 인수위 분위기에 적지않은 당혹감을 느끼게 된다. 당선자는 "집단소송제를 않겠다면 허위공시를 하겠다는 것이냐"며 재계에 대한 불만을 피력했다는데,과연 논리적인 시각이며 적절한 표현인지 의문이다. 재계가 집단소송을 반대하는 것은 소송 남발로 경영이 위축되고 결과적으로 소액주주에게 피해를 준다는 실증적 사례에 근거한 주장으로 경청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더구나 허위공시 등에 대해서는 지금도 증권거래법 등에 의해 강력하게 처벌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 따로 집단소송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논리는 성립되지 않는다. 상속세 포괄주의나 출자총액제한 제도에 대한 논란도 마찬가지다. 포괄과세의 선명성과 상징성에 비해 정작 실효성은 낮고 기존의 유형별 포괄주의 만으로도 충분히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반론이 '조직적 반발' 운운하는 비난을 들으며 배척당해야 할 이유는 없다. 출자총액제한 제도가 사례를 찾기 힘든 기형적 법률임은 더구나 긴 설명이 필요없다. 어떤 사업에 얼마를 출자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기업의 선택일 뿐 행정관청이 이를 규제한다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다. 문제는 소위 재벌개혁 3대 과제를 둘러싼 논의가 되풀이되면서 그렇지 않아도 불투명한 경영환경에 둘러싸여 있는 재계의 어려움만 더욱 가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 3대 과제는 결국 국회에서 결론을 낼 성질의 것이지만, 인수위에서의 논란이 반복되면서 우리사회 일각의 반기업 정서만 확대 증폭시키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