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5일 등장할 노무현 정부는 퇴임하는 김대중 정부처럼 농업관련 통상현안을 다음 행정부에 미룰 수 있는 정치적 행운을 갖고 있지 못하다. 동시에 농업문제 해결 없이는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구상하고 있는 '중국특수를 통한 한국 경제 성장', 나아가 '동북아경제협력체'는 공염불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농업은 한국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민감한 분야의 하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대선유세 때 대통령직을 걸고 막겠다던 쌀 시장을 개방해야 했던 우루과이라운드 농업협상 이후 지난 10여년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 없이 인기영합적이고 단견적인 정치논리로만 문제를 접근했기 때문에 10년전에 비해 문제해결이 더 어려워진 상황이다. 농민들은 정부정책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 차 있으며,실무자와의 대화와 타협보다는 시위와 투쟁을 통해 정치적인 거래를 하는 방식에 더 익숙해져 있다. 정부는 고통이 따르고 정치적으로 인기 없는 구조조정정책보다는 국제적 경쟁력이 뒤지는 품목의 증산을 자극하는 그릇된 정책유인을 조장해 문제를 더욱 왜곡시켜 왔다. 노 당선자는 이번 대선과정에서 2004년으로 예정된 세계무역기구(WTO)에서의 쌀 관세화 재협상과 관련,관세화를 허용하는 것보다는 최소시장접근 물량을 더 늘리고,한국의 개도국 지위를 확보하겠다는 공약을 내건 바 있다. 한국에 쌀이 중요한 만큼 쌀 수출이 중요한 일부 WTO 회원국들에 이러한 강경한 협상안이 얼마나 수용될지는 미지수다. 만약 한국이 성공적으로 이러한 협상목표를 성취한다고 해도 진정 그것이 중장기적으로 한국의 농업에 바람직한 것인지,더 나아가 한국경제에 바람직한 것인지는 확언할 수 없다. 그 이유는 한국에 가장 중요한 시장의 하나인 중국과의 통상문제는 농업문제를 피해갈 수 없기 때문이다. 통상협상은 주고 받는다는 대전제 아래 출발한다. 일방이 원하는 것만을 얻어내고 상대방의 요구를 모두 거부한다는 것은 협상의 대전제와 배치되는 것이다. 협상을 타결하지 않을 합리적인 이유는 협상을 거부했을 때 일방적으로 취할 수 있는 대안이 협상안보다 더 매력적일 때만 가능하다. 대외지향 경제체제를 근간으로 경제성장을 추구해 왔고,GDP의 70% 이상을 무역에 의존하는 한국의 경우 보다 개방적인 경제체제를 대체할 만한 매력적 대안은 없다. 안타까운 것은 한국이 가진 대안이 초라함에도 불구하고,대다수 국민들은 한국이 원하는 대로 받기만 하고 적게 내어 주는 협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현실이다. 때문에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는 통상문제의 속성상,일부 목소리가 큰 집단이 원치 않는 방식으로 통상마찰이 불거질 때마다 화살은 통상전문가에게 돌려졌고,전문가는 소모품마냥 버려지곤 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일수록 모든 사람이 동의할 수 없고,대립이 치열할 수밖에 없으며,과단성 있는 결단이 내려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집권세력은 눈치보기에 급급했다. 인수위가 추진하는 것으로 보도되는 FTA 산업피해보상제도는 이러한 눈치보기가 앞으로 더 만연할 것 같은 불길한 조짐을 주고 있다. '국민이 대통령입니다'를 앞세우는 차기정부가 목소리 큰 일부 계층의 특수이익을 마치 국민의 이익인 양 반영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자아내게 하고 있다. 한국국민의 90% 이상은 농산물 소비자다. 이들에게 가격경쟁력이 뒤지는 한국농산물의 소비를 오랫동안 강제하다 돌연 이들의 지갑에서 농산물 개방의 피해를 보상하겠다는 것이 과연 국민이 대통령이 되는 통상정책인지 납득하기 힘들다. 외견상 양립하기 힘들어 보이는 농업시장 보호와 동북아경제공동체 실현이라는 공약을 내걸고 집권하는 노무현 정부가 과연 고통이 있지만 나라의 미래를 위한 초석을 놓을 통상정책을 의욕적으로 추진할지,아니면 퇴진하는 김대중 정부의 지난 5년세월이 보여주듯이 '세계 10대 통상대국 진입''외국인이 가장 기업하기 좋은 나라' 등 말만 앞서고 행동은 따르지 않는 전철을 밟은 것인지는 역사가 지켜볼 것이다. -------------------------------------------------------------- byc@ewha.ac.kr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