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을 이틀 앞둔 지난달 30일 오후 4시. 서울 노원구 까르푸 중계점에는 인근 노인복지회 풍물패의 꽹과리 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매장 한켠엔 가훈을 무료로 써 주는 서예가들도 눈에 띈다. 곳곳에 걸린 "복(福) 풍선"과 풍물 소리가 어우러져 외국계 할인점인 이 곳에도 명절 분위기가 완연하다. 차로 7분을 달려 도착한 롯데백화점 노원점. 주부 수십명이 1층 출입구 옆 매대로 몰려들고 있다. 간신히 1만원짜리 목도리 1장을 집어든 주부 배민원(53.장이동)씨는 "남편에게 이 색깔이 어울릴 것 같냐"며 기자에게 묻는다. 노원점에서 5분 거리에 있는 농협하나로클럽 창동점에 들어서는 순간 입이 딱 벌어진다. 쇼핑 인파가 매장을 가득 메워 떠밀리지 않고는 한발짝도 앞으로 나가기 힘들 정도다. 중산층과 서민층이 많이 사는 노원구와 도봉구. 서울 동북상권에 속하는 이 지역 주민들은 아침마다 신문에 끼여있는 판촉전단지 더미를 놓고 고민에 빠질 때가 많다. 전단지는 롯데백화점 노원점을 중심으로 반경 3㎞ 안에 자리잡은 8개 할인점과 패션할인점에서 보내온 것들이다. 자가용을 이용하면 불과 5∼15분 이내에 모두 닿을 수 있는 가까운 거리. 중계동에 사는 주부 양인영씨(30)는 "아이들 옷은 패션할인점에서 주로 사고 식품은 할인점에서 구입한다"며 "쉽게 갈 수 있는 쇼핑시설이 많아 가격을 꼼꼼히 비교한 다음 골라 가는 재미가 있다"고 말한다. 동북상권에 대형 할인점이 등장한 것은 지난 93년 11월. 신세계 이마트가 1호 매장인 창동점을 열었다. 지금은 할인점 5개,패션할인점 2개,백화점 1개 등 8개 대형 유통매장이 매주 1백만장에 가까운 전단을 뿌리며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고급 백화점들이 즐비한 강남지역과 달리 이 지역에선 할인점들이 상권의 맹주로 군림하고 있다. 하나로클럽 창동점은 지난해 소매로만 3천5백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패션할인점인 2001아울렛 중계점은 유명 브랜드 이월상품을 싸게 팔아 1천4백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한국 최초의 할인점인 이마트 창동점은 매장 면적(1천4백여평)은 작지만 평당 매출에서는 전국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롯데마트 중계점 황인혁 점장은 "단위면적(1㎢)당 아파트 가구수가 3천9백여가구로 서울 평균보다 2배 이상 많아 경쟁이 심해도 대부분 장사가 잘 되는 편"이라고 설명한다. 할인점을 골라가며 쇼핑하는 동북상권 주민들에게도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쇼핑시설은 많지만 문화·엔터테인먼트 시설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지역주민들은 한결같이 "주말에 가볼 만한 변변한 영화관 하나 없다"고 불평한다. 이런 불만도 올 연말이면 다소나마 해소된다. 롯데백화점 노원점(옛 미도파 상계점)이 문화·엔터테인먼트 시설을 갖춘 점포로 거듭나기 때문이다. 롯데는 4월 말부터 노원점 안팎을 모조리 바꾸는 공사를 벌인다. 공사비는 7백14억원. 웬만한 백화점 건축비와 맞먹는다. 롯데는 노원점 10·11층에 8개관,1천6백석 규모의 멀티플렉스 영화관을 새로 들이고 9층 식당가엔 패밀리레스토랑 TGI프라이데이스를 입점시키기로 했다. 할인점 업체들도 동북상권에 새 점포를 낼 계획을 갖고 있어 지역주민들의 선택의 폭은 앞으로 더욱 넓어질 것으로 보인다. 까르푸는 롯데마트 도봉점 인근에 오는 7월 초 방학점을 새로 연다. 신세계 이마트도 6백27억원을 들여 매입한 월계동 성신양회 부지(2만1백86평)에 2004년 상반기 중 초대형 점포를 열기로 했다. 신세계 관계자는 "할인점과 함께 카테고리킬러 매장을 대거 입점시켜 김포공항점처럼 꾸밀 계획"이라며 "멀티플렉스 영화관을 유치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류시훈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