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상선의 일부 자금이 남북경제협력 사업에 사용된 것이라면 향후 남북관계의 지속적인 발전과 국가의 장래이익을 위해 사법심사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김대중 대통령의 언급이 어느 정도 국민적 공감을 얻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작년 9월 국정감사 과정에서 남북정상회담 성사를 위한 '뒷돈'지원 의혹이 제기된 이후 지금까지 관계당국자들이 하나같이 "단돈 1달러도 주지 않았다"고 강변해왔던 점을 되새기면 더욱 그렇다. 당시 환율로 2억달러에 해당하는 2천2백35억원 송금사실이 확인된 이상 이제 정부는 이 국민적인 의혹사건에 대해 진솔하게 모든 것을 밝혀야 한다. 사법심사의 대상으로 삼아야 하느냐 아니냐는 문제는 그 다음에 생각해야 할 일이다. 그동안의 과정을 되돌아보면 상식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정말 한둘이 아니다. 책임있는 자리에 있었던 고위 공직자들이 대북자금지원설을 밝혔던 사람들을 형사고발했던 일도 그중 하나다. 도대체 최소한의 양식이라도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는지 충격을 금하기 어렵다. "현대상선의 일부 자금이 남북경제협력사업에 사용된 것이라면…"이라는 김 대통령의 표현도 납득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마치 현대상선이 주체가 된 '남의 일' 얘기하듯 할 일은 절대로 아니라고 본다. 남북간 평화정착과 교류확대를 위해 대북자금지원이 불가피했다면 왜 합당한 절차를 거쳐 당당하게 지원하고 이를 밝히지 못했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그 당시에 그렇게 하기 어려웠고,적당한 기회를 찾다가 실기한 것이라면 지금이라도 모든 것을 솔직하게 밝히고 국민들의 이해를 구해야 한다. 대북(對北) 송금사실 자체를 시인했다고 해서 의혹이 해소된 것은 결코 아니라고 본다. 그동안의 경위가 명확히 규명되지 않으면 안된다. 국회의 국정조사나 특검제 요구가 나오고 있는 것은 따지고 보면 지극히 당연한 귀결이다. 그러나 그렇게 될 경우 김 대통령의 모습은 더욱 초라해질 것이고 대내외적으로 국가체면이 말이 아니게 될 수도 있다. 김 대통령이 결단을 내려야 한다. 모든 것을 소상하게 사실대로 밝히고 잘못한 것은 분명히 사과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통치 차원의 일이기 때문에 덮어야 한다는 주장만을 고집해서는 될 일이 아니다. 나라를 위해서는 물론이고 대통령 자신을 위해서도 현명한 판단이 요구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