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경제인연합회 차기 회장을 선임하는 정기총회가 오는 7일로 다가왔다. 전경련이 주요 그룹 회장들의 뜻을 모아 손길승 SK 회장에게 다음번 회장을 맡아달라고 제의했지만 손 회장마저 고사의 뜻을 굽히지 않고 있어 막판 진통을 겪고 있는 상태다. 그럼 역대 전경련 회장들은 어떻게 뽑았을까. 이에 대해 과거 개발연대에 전경련 부회장을 지낸 김입삼 전경련 고문은 "회장직을 선뜻 맡겠다고 얘기한 적은 전경련 창립 이래 한번도 없었다"고 잘라 말한다. 현 김각중 회장부터가 그렇다. 지난 99년 11월 김우중 회장이 갑작스레 물러나면서 회장 대행을 맡았지만 2000년 2월 26대 회장으로 선임되기에 앞서 거듭 고사의 뜻을 밝혔다. 결국 전임 회장의 잔여 임기 1년을 채우는 조건으로 수락하면서도 "답답하다.할 일이 많은데 책무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는 심경을 토로했다. 잔여임기가 끝나는 2001년 2월 27대 회장 선임을 앞두고는 김각중 회장을 재추대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회장단·고문단이 '추대회의'를 갖고 만장일치로 박수를 쳤지만 김 회장은 "절대로 못한다"며 추대모임은 물론 총회장에도 참석하지 않을 정도로 강한 고사의 뜻을 나타냈다. 지난 77년부터 87년까지 10년 동안 13∼17대 회장을 맡았던 고 정주영 회장은 막역한 사이였던 구자경 회장(현 LG 명예회장)에게 바통을 넘겼다. 당시 구 회장은 "정 회장의 '권유'와 '부탁'을 마다할 수 없는 처지여서 받아들이지만 꼭 2년만 하겠다"며 18대 회장을 맡았다. 19대 회장을 뽑던 89년 2월엔 구 회장이 '당초 약속'을 들어 한사코 재추대를 사양하자 국무총리 출신인 유창순 회장(현 롯데제과 고문)이 맡게 됐다. 유 회장도 고사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총회에서 밀어붙이자 "미처 취임사도 준비못했다"며 즉석에서 수락연설을 해야 했다. 비(非)오너 출신의 전경련 회장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유 회장의 2년 임기가 끝나자 재계의 분위기는 고 최종현 회장을 천거하는 쪽이었다. 그러나 당시 62세였던 최 회장은 "일본 게이단렌 등의 경우를 보더라도 좀더 연륜이 있는 분이 하는 게 좋겠다"는 뜻을 밝혀 유 회장이 연임하게 됐다. 최 회장이 고사한 데는 당시 노태우 대통령과 사돈관계라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었다. 최 회장은 다음번인 21대 회장을 맡아 23대까지 3번이나 연임했지만 마지막 연임 조건으로 '차기 회장을 내정해 달라'고 요구했다. 98년 2월 최 회장의 추천으로 차기 회장으로 내정된 김우중 회장은 같은 해 8월 최 회장의 별세로 회장대행을 거쳐 9월부터 제24대 회장을 맡았고,이듬해 2월엔 25대 회장을 맡았다. 거슬러 올라가면 4∼5대와 9∼12대 회장을 지낸 고 김용완 회장도 마지막 연임 때는 완강하게 고사했고,회장으로 추대된 다음에도 한달 이상 자택에 머물며 버티기도 했다. 지난 61년 고 이병철 초대회장 이후 42년동안 전경련 회장을 지낸 사람은 모두 10명. 회장 선출방식은 '교황 선출방식'을 연상케 한다. 여느 단체장을 선출할 때 표결절차를 거치는 것과는 자못 다르다. 총회에서 '회장선임' 안건이 상정되면 대개 한 회원의 발의로 '전형위원'을 뽑고 이 위원들은 별도 장소에서 20∼30분간 신임 회장 후보를 선정하는 절차를 밟는다. 이렇게 추천한 후보를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시킨다. 그러나 이같은 절차는 그야말로 '형식'일 뿐이다. 총회에 앞서 다양한 조율을 거쳐 '추대작업'을 해놓는 것이 관례다. 전경련 회장단과 원로들의 추인을 받아 물망에 오른 총수를 대상으로 '수락'을 받기 위해서는 '숨막히는 설득작업'을 벌여야 한다. 손희식 기자 hssoh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