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팔고 논밭 팔아가며 아들의 공부를 뒷바라지했다. 그 덕으로 아들은 무사히 공부를 마친 뒤 취직을 했고,또 자기에게 걸맞은 아내를 얻어 가정을 이루었다. 그러나 아들이 성공하면 그 부모를 용상에라도 올려줄 듯,유난스런 한국적 모성애를 쏟아붓느라 자기 인생을 탕진한 어머니는 병들어 죽고,홀로 남은 아버지는 아들집으로 올라왔다. 노인 혼자 시골집에서 밥해먹고 홀로 사는 것이 너무 힘들어 아들과 함께 살아볼 요량으로,농사지은 것을 가지고 아들집에 올라왔으나,반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며느리의 눈총을 받더라도 손주 재롱 보아가며 혼자 사는 것보다는 그래도 나을 듯한,덜 쓸쓸한 노년을 그려보면서 고향 이웃들과 작별할 때의 꿈과는 너무도 달랐다. 며느리는 고사하고 아들조차도 '그저 며칠 계시다가 내려가시려니' 생각하는 눈치였으니,"잘 올라오셨습니다. 노인이 혼자서 어떻게 조석 진지 손수 지어 잡수시고 농사까지 지을 수 있느냐"는 동정 어린 한마디는 빈 입에라도 뱉어 주지 않았으니,당초의 기대는 너무나 잘못된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시골에서 손수 말린 곶감을 손주에게 주면,"그런 것 안먹는다"면서 도시아이들의 군것질거리를 더 좋아했고,할아버지 얘기보다 게임이나 TV프로를 더 즐겼다. 아파트가 답답해 나갔다가 점심때를 놓치고 들어와도,강아지밥은 때맞춰 챙겨주면서도,노인의 끼니는 아무도 챙겨주지 않았다. 마른 빵조각으로 끼니를 겨우 때웠는데,국물있는 음식이 먹고 싶어도 말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목이 말라 부엌에라도 들어 갈라치면 파출부가 질겁을 하지 않는가? 노인이 외출을 해도 "어딜 가시느냐"고 묻는 이가 없고,심지어는 파출부조차도 열쇠 없이 문 열어달란다고 짜증을 내며 객식구 취급했다. 한 열흘쯤 머무르는 동안 아들집의 역학구조를 정확히 간파할 수 있었으니, 손주는 1번,며느리는 2번,돈벌어오는 아들은 3번,재롱 부려주는 강아지는 4번,며느리 대신 일을 해주는 파출부는 5번인데,군식구나 다름없는 노인 자신은 꼴찌인 6번이 아닌가. 견디다 못한 노인은 옷가지를 챙겨 가방을 쌌다. 그러나 손주도 며느리도 파출부조차도 "왜 그러느냐"고 묻지를 않았다. 노인은 아들집을 떠나 시골로 내려가는 길에,'그래도 내 자식인데,자식에겐 알려야지'하고 아들 직장으로 전화를 걸어, "얘 3번아,6번은 그만 내려간다"라고 알렸단다. 노인학대를 연구하는 어느 학자의 얘기였다. 그래도 자기자신을 스스로 건사할 수 있는 노인의 처지가 이 정도일 것이다. 자신의 몸도 입도 제대로 추스를 수 없는 노년들은 위의 경우를 약과라고 할 것이다. 아무도 우리시대 노년들의 처지가 가엾은 지경을 넘어 방치된 상태라는 데는 토를 달지 못할 만큼,노년들의 물리적 심리적 물질적 상황은 '복지'라는 말이 부끄러울 정도로 비참하다 해야 옳을 것이다. 이 세대들은 허리띠 졸라매고,먹을 것 안먹고,입을 것 안입어가며,자식 뒷바라지에 생애를 바치며 보람을 느껴온 세대들이 아닌가. 그럼에도 정작 이들의 노년은 가정에서조차도 6번의 처지가 돼버렸다. 오늘 우리 현실이 전 시대보다 나아졌다면,바로 이 6번들의 피땀에 빚진 게 아닌가. 그런데도 세상은 '젊은피 젊음 젊음'하면서,마치 예찬받는 젊음들이 저 혼자 그렇게 된 줄로 생각하진 않는 걸까? 2030이 만약 "월드컵도 젊음이 해냈고,민주화도 인터넷문화도 젊음이 해냈는데,5060 당신들은 무얼 했느냐"면 이 얼마나 기가 찰 노릇인가? 경로니 노인복지니 하기에 앞서 노년세대에 대한 바른 이해가 이루어져야 하고,힘든 시대에 경제발전이니 정치 사회 발전에 밑거름이 되느라고 고달픈 삶을 살아왔다기보다는 견뎌 왔다 해야 할 노년세대에 대한 올바른 평가도 이루어져야 세대간의 갈등이 해소될 수 있고,세대간의 깊은 골도 메워질 수 있지 않을까? 집 나간 노인들,노년 노숙자들,여행지나 거리에 버려진 노인 등,각종 현대판 고려장으로 의지가지 없어진 노년들에 대해,국가는 가족이나 종교단체 자선활동에만 맡기지 말고 어떤 대책이든 시급하게 서둘러야 할 것이다. anjyo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