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증시가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는 속담이 있듯이 하루에 조금씩 떨어지던 주가가 어느덧 600선을 위협하고 있다. 주가가 떨어지고 오르는 것은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일처럼 흔한 일이어서 크게 염려할 일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과거 주가추이를 보면 1월에는 '정월효과'라고 하여 주가가 대체로 강세를 유지했다. 신년벽두에 쏟아져 나오는 각종 장밋빛 청사진 때문에 주가가 강세를 유지하는 현상이 정월효과다. 이러한 정월효과도 요즘 맥을 추지 못하고 있다. 세계 증시의 동반화현상 때문에 미국 경제가 침체를 거듭하고 있는 한 한국증시도 회복되기 어렵다는 견해도 있을 수 있다. 한국증시가 미국증시와 차별화 현상을 보인다는 것은 희망사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증시를 짓누르는 악재는 미국 경제의 침체만이 아닐 수도 있다. 증시는 경제의 미래를 비춰 주는 거울이기 때문에 한국경제의 미래를 증시를 통해 가늠해 볼 수 있다. 주가의 등락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기보다 증시를 통해 한국경제의 미래를 예측하고,이에 적극 대처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경제는 경제주체들의 기대대로 움직이지는 않지만,경제주체들의 기대가 경제를 움직이는 한 축임에는 틀림없다. 경제주체들이 미래를 밝게 보고 경제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면 경제는 활력을 되찾게 마련이다. 경제주체들의 기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두 가지 악재는 불신과 불확실성이다. 투자자들이 기업의 회계장부를 불신한다면 그 기업의 주가는 떨어지게 마련이다. 이라크사태로 불확실성이 증폭되는 상황에서 증시의 활력을 기대하는 것은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는 것과 다름이 없다. 미국증시가 엔론사태 및 이라크사태 때문에 침체돼 있고,이에 영향을 받은 한국증시가 동반침체현상을 보이고 있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운신의 폭은 좁을 수밖에 없다. 한국증시의 차별화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금 한국증시에는 미국발 불신과 불확실성 외에 우리 나름대로의 불신과 불확실성은 없는지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동서간 불신이야 그렇다 치더라도,요즘 세대간 그리고 노사간에도 불신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남북간의 분단도 가슴 아프지만,그렇게 크지 않은 우리나라를 조각조각 갈라놓는 불신의 벽이 높아지고 있다.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라는 기업가 정신을 신봉하면서 일한 기업가들은 축적된 부 때문에 자부심을 느끼기보다는 오히려 부담감을 느낄 경우가 생기지 않을까 염려하고 있다. 이라크사태 외에 북핵이라는 불확실성 또한 우리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 북한당국의 거듭된 천명에도 불구하고 핵 공포는 여전히 우리 주위를 맴돌고 있다. 핵의 공포에서 벗어 날 수 있다면,우리의 동포인 북한주민들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식량원조에 반대할 만한 명분은 없다. 그것이 비록 일방적이고 굴욕적이라고 해도 잘 사는 남한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의무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핵이라는 불확실성이 해결되지 않는 한 미래를 위한 투자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성장과 분배의 조화를 어떻게 이룰 것인가 하는 문제도 불확실성을 증폭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성장과 분배는 결코 상호배타적인 개념이 아니다. 성장의 최종목표는 분배이고,성장의 과실을 골고루 분배해야 성장의 활력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장을 주장하는 측도 성장일변도만 주장하는 것이 아니고,분배를 주장하는 측도 분배를 위한 분배만을 주장하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아직 우리에게는 갈 길이 멀다. 옛날보다 사는 형편이 좋다고는 하나 아직 국민소득은 1만달러 미만이다. 우리 주위에 어지럽게 널려 있는 불신의 벽을 허물어 상호간에 신뢰를 구축하고 우리의 미래를 암울하게 하는 불확실성을 제거해 미래를 예측가능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한국경제를 도약시키는 지름길이며,경제가 좋아지면 증시는 자연히 고공비행을 할 것이다. leesb@hanyang.ac.kr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